유정의 여정

유정의 여정
드레스와 화관 모두 비네뜨(Vignette).

죄와 벌, 복수와 용서는 수세기 전부터 고전이 사랑한 이야기 재료다. 형태와 구조만 바뀌었을 뿐 지금까지도 숱한 소설과 영화, 드라마에 차용되는 데는 그만큼 풀기 어려운 삶의 근원적인 질문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평생의 짝이라 생각한 연인을 잔혹하게 살해한 살인마가 사형을 언도받았다면 당신은 그를 용서할 수 있는가? 그 살인자에게 순수하고 예쁜 딸이 있다면 그녀에게 책임을 전가해도 될까? <더 테러 라이브>를 각색한 박은경·이동하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영화 <비밀>. 살인자의 딸을 데려다 키운 형사, 그리고 피해자의 약혼자가 10년 뒤 다시 만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갈등의 중심축인 살인자의 딸 ‘정현’, 그 무거운 왕관을 김유정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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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피스 씨씨콜렉트(CC Collect), 반지 젤라시(Jealousy), 브레이슬릿 겟미블링(Getmebling).

말도 잘 못하던 네 살 때부터 카메라 앞에 선 그녀가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출연을 결정한 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영화 <비밀>의 의미는 크다. 인터뷰 중 그녀는 ‘느꼈다’, ‘생각했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찰나의 순간을 허투루 흘려보내거나 뭉개지 않고, 세세하게 느끼고 깊이 생각하려 애쓰는 그녀의 평소 생활이 그려졌다. 그리고 그녀는 작품의 무게를 견디며 좋은 배우라면 한번쯤 경험할, 몰입이 동반하는 공포를 생애 처음으로 느꼈다고 고백했다. 연기는 무섭지만 가야 하는 길이고, 자신을 계속 앞으로 갈 수 있게 만드는 것도 결국 연기라고 생각하는 그녀는 배우이자, 열일곱 살 소녀가 겪을 감정의 동요를 단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마주한 진한 눈빛과 풍부한 표정에서 아름다운 배우의 얼굴을 봤다. 감탄하는 사이 그녀가 해사한 미소의 소녀로 돌아와 알밤을 내밀었다. “이거 저희 엄마가 아침에 삶은 밤이에요. 제가 밤을 아주 좋아해서 잘 아는데요. 이거 되게 맛있는 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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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피스 럭키슈에뜨(Lucky Chouette), 반지 스톤헨지(Stone Henge), 브레이슬릿 스와로브스키(Swarovski), 네크리스 겟미블링(Getmebling).

<비밀>은 고통스러운 용서에 대한 이야기죠. 열일곱 살이 아니더라도 이건 누구에게나 어려운 주제예요. 시나리오 읽고 느낌이 어땠어요? 보통 시나리오를 보면 머릿속에 장면이 그려지는데 <비밀>은 잘 보이지 않았어요. 제 또래 아이가 겪기 어려운 일이고, 설사 경험했다 하더라도 온전히 버텨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요. 어린 시절, 옷장에 숨어 아버지가 어머니를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한 아이가 열일곱 살이 되었을 때 어떤 모습으로 일상을 살아내고 있을까? 그걸 계속 생각했어요.

단편적인 감정의 연기가 아닌 여러 개의 층이 켜켜이 쌓인 복잡한 캐릭터예요. 이런 작품을 해온 배우들이 종종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려웠다’는 말을 하잖아요. 어땠나요?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려웠다’는 그 말을 처음 경험했어요. 그리고 몰입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도 알았어요. 이전까지는 혼자 생각하는 시간도 없을뿐더러 지금보다 생각하는 힘이 적었기 때문인지 얼렁뚱땅 일상으로 돌아왔거든요. 당시 영화 <비밀>과 드라마 <앵그리맘>을 연달아 촬영했는데 <앵그리맘>의 ‘아란’이라는 역할도 집단따돌림을 당하고, 친구의 자살을 경험한 아이라 쉽지 않았어요. <비밀>을 촬영하면서 친해진 스태프 한 분이 쫑파티에서 제가 두 작품을 동시에 찍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앞으로는 지금처럼 강도 높은 역할을 선택할 때는 좀 더 신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사실 그때만 해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몰랐는데, 그 이후에 두 개의 역할을 한 만큼 두 배로 감정이 몰아쳤어요. 묘했죠. 김유정이라는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 같았어요. 캐릭터에서 빠져나온다는 말은 곧 나를 찾아 돌아오는 길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비밀>의 정현이와 <앵그리맘>의 아란이가 제 양옆에 서 있다가 떠나면서 제 일부를 함께 떼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이렇게 계속 연기를 하면 나 다 없어지는 거 아니야?(웃음) 했죠. 앞으로 역할을 결정할 때 이런 상황도 고려해야겠구나 싶었고요.

앞으로 연기를 하면서 배우로서 성장통도 겪어야 할 텐데요. 지금이 그 시기인 것 같아요. 내가 성장통을 겪고 있구나 하고 스스로 알아챌 정도예요. 하지만 쑥쑥 자라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 좋아요. 이 순간을 자세히 느껴보고 기억하려고 해요. 이 과정을 지나야 제가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무엇이 먼 미래의 순간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내게 더 이로울까 한번 더 생각해봐요. 훗날 지금을 되돌아보며 이렇게 하길 참 잘했다 말하고 싶어요. 지금은 저 혼자 결정하는 걸 연습하는 시기인 것 같아요. 사소한 고민도 많아요.(웃음)

생각이 많아서 그럴까요? 의외로 목소리가 작고, 말수가 없어서 놀랐어요. 어릴 때는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도 못했어요. 촬영장에서 하루 종일 참은 적도 있죠. 중학생 때부터는 말도 많아지고 목소리도 컸는데 지금은 다시 바뀌는 거 같아요. 자꾸 조심하게 되고 덜 말하려고 해요. 조용히 말하고, 가만히 있는 게 되레 편해요. 내가 어떻게 했을 때 편안하고 좋은지 인지하면서 진짜 나를 알아가는 것 같아요. 그 과정이 너무 좋고 재미있어요. 제 안에 큰 기둥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솔직한 성격이라 바로 감정이 튀어나올 때도 있지만 앞으로 조심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그게 상대방에게도, 또 저에게도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요. 물론 싫으면서 억지로 하는 건 저도 싫죠. 하지만 이 일을 하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때로는 하기 싫은 것도 마음을 잘 바꿔서 해내야 하는 것도요.

유정의 여정
니트 톱 커밍스텝(Coming Step), 스커트 프리마돈나(Fleamadonna), 구두 레페토(Repetto), 브레이슬릿 해수엘(Haesoo.L), 반지 스톤헨지(Stone Henge).

어릴 때부터 연기를 시작한 배우들 중에는 연기를 학습한 탓에 지나치게 기계적인 연기를 하는 이들이 더러 있죠. 그런 면에서 유정씨는 유연하게 성인 연기로 진입한 편이에요.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좋은 평도 받았고요. 배운 연기가 아니기 때문일 거예요. ‘이 대사는 이렇게 쳐야 해’ 하는 식으로 가르쳐준 사람이 없어요. 연기학원을 다닌 적도 없고요. 인식이 박혀 있는 게 없으니까 자유롭게 연기하는 편이죠. 물론 그 자유로움도 제가 계속 답습하다 보면 나쁜 습관이 될 수 있겠죠. 옆에서 잡아주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제가 계속 조심해야 해요.

시나리오 쓰는 게 취미라고요. 그날그날 잠깐의 기분이라도 문장으로 쓰려고 노력해요. 거기에서부터 시나리오가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 줄의 생각이 열 줄이 되고, 그 열 줄들이 모여 장면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연습을 하죠. 버스정류장에 누가 앉아 있는데 그 모습을 풀숏으로 보면서 스토리를 붙여나가는 거예요. 글을 쓰다 보면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어 마음이 편해져요. 평소에는 너무 많이 주위를 살피면서 지내야 하는데, 그 순간만큼은 주변을 보지 않아도 되거든요.

오늘 아침에도 영화를 보고 왔다고 하던데,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요? <로렌스 애니웨이>나 <러블리 본즈>처럼 묵직하게 와 닿으면서도 잔잔한 여운이 있는 작품들이 저와 잘 맞아요. 아침에 본 <레인 오버 미>도 좋았어요. 책이나 영화를 보거나 누군가를 만날 때 그 상황에서 무언가 하나는 제 안으로 끌어들이려 해요.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어! 저런 표현도 가능하구나, 나도 저렇게 해봐야지’ 하는 순간이 많거든요. 저는 그분들보다는 경험이 적으니까 책이나 영화, 사람들의 관계도 연기의 눈으로 보게 되는 거예요. ‘이 영화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배우는 연기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장면을 이런 각도로 찍었으면 어땠을까’, ‘내가 이 캐릭터의 삶을 살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하죠. <비포 선라이즈>에서 줄리 델피가 연기한 ‘셀린느’ 같은 캐릭터도 좋아요. 상황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거기에 잘 녹아 있는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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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영에 대한 기대

마리끌레르 코리아 - 류혜영에 대한 기대

마리끌레르 코리아 - 류혜영에 대한 기대
화이트 오버 핏 셔츠 코스(COS), 앞이 트인 아이보리 스커트 톰보이(Tomboy), 스트랩 스틸레토 힐 할리샵(Hollyshop), 반지 모두 넘버링(Numbering).
마리끌레르 코리아 - 류혜영에 대한 기대
그레이 니트 터틀넥 풀오버 앤더슨벨(Andersson Bell), 데님 팬츠 씨위(Siwy), 스틸레토 힐 모노바비(Monobabie), 반지 모두 넘버링(Numbering).
마리끌레르 코리아 - 류혜영에 대한 기대
그레이 니트 터틀넥 풀오버 앤더슨벨(Andersson Bell), 반지 모두 넘버링(Numbering).

독립영화 <잉투기>에서 류혜영이라는 배우를 처음 봤다. 그녀가 연기한 인물 ‘영자’의 괴짜 같은 모습은 꽤 충격적이었다. 분홍색 가발을 쓰고 치킨을 우적우적 뜯어 먹던 장면, 육두문자를 대차게 내뱉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녀는 이후 설경구, 박해일이 함께한 영화 <나의 독재자>, 허당기 넘치는 국가정보원 요원으로 등장했던 드라마 <스파이>를 통해 똘기(!)를 조금 덜어낸 연기를 선보였다. 그런데도 사실 여전히 류혜영이라는 배우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분명 <잉투기>에서 인상은 막강했지만, 다른 몇몇 작품에서는 조금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간 것 같기도 하다. 얼마 전 그녀가 곧 방영되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캐스팅됐다. 응답하라 시리즈 특유의 쫀득한 스토리를 통해 드러날 그녀의 모습이 벌써부터 머릿속에 그려진다.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로 가득한 이 드라마에 괴짜 소녀 영자를 보며 느꼈던 거칠지만 생생한 날것의 느낌이 어떻게 녹아들었을지도 궁금하다. 아무래도 지난 시즌에 푹 빠졌던 것처럼 <응답하라 1988>도 꼬박꼬박 챙겨 보게 될 것 같다.

매 시즌 엄청난 사랑을 받는 드라마죠. <응답하라 1988>에 합류하게 된 소감이 어떤가요? 감독님께서 영화 <잉투기> 속 제 모습을 보시고는 “저 못생기고 이상한 애 누구야?” 하시면서 역할을 맡기자고 하셨대요.(웃음) 막상 캐스팅 미팅에 갔을 땐 긴장해서 연기를 제대로 못했는데 캐스팅이 확정됐다는 연락이 와서 엄청나게 기뻤죠. 우리 드라마가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지 너무 기대돼요.

한편으로는 부담도 될 것 같아요. 아주 많은 사람들이 크게 기대하는 드라마니까요. 캐릭터의 이미지에 오랫동안 갇혀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해요. 그래도 다행인 게 제가 연기하는 인물이 굉장히 입체적인 캐릭터예요. 성격도 수시로 변하고, 또 풍부한 감정 표현도 그렇고요.

1988년에 살고 있는 캐릭터를 이해하는 과정이 까다롭지는 않았나요? 캐스팅되고 나서 촬영을 시작하기까지 준비 기간이 길었어요. 그래서 맡은 캐릭터와 깊이 친해질 시간이 있었죠. 매일 보는 가까운 친구가 된 느낌이에요. 실제 제 모습과 연결해보려 노력했어요. 닮은 점을 하나씩 찾아가면서요. 아무래도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땐 1991년생인 제가 태어나기도 전의 이야기를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도 했죠. 그런데 시나리오를 모두 읽어보니 시대를 넘어서는 따뜻한 정서의 가족 이야기더라고요. 물론 1988년대를 자세히 상상하면서 연기에 몰입하는 것도 잊어선 안 되죠. <응답하라 1988>은 27년 전의 시대라는 근사한 옷을 입은 드라마니까요.

같이 촬영하는 배우들하고도 가족처럼 지내고 있겠네요. 푸근한 선배 배우들도 있고, 또 친구같이 지낼 또래 배우들도 많잖아요. 진짜 재미있어요. 특히 함께 출연하는 배우 고경표와는 대학 때부터 절친한 사이예요. 다른 배우들하고도 많이 친해져서 편해요. “촬영보다 회식을 더 많이 한다, 이제 일 좀 하자”라며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자주 모여요.(웃음)

연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예술고등학교로 진학했어요. 매일 학교, 학원, 독서실을 전전하는 패턴에서 벗어나고 싶었거든요. 미래를 위해 공부에만 매달리는 것보다는 그 나이에 맞게 매 순간을 신나게 보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예고에서 연기를 공부하면서 단편영화를 찍으려 다녔고, 첫 장편영화 <잉투기>를 만나면서 조금씩 작품의 폭을 넓혔죠. 고등학생 때부터 유난히 현장에 머무는 시간 자체를 좋아했어요. 연기자로든 촬영 스태프로든 꼭 현장에서 지낼 수 있는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요.

현장이 아무리 좋아도 가끔은 지칠 때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촬영하는 건 힘들지 않아요. 다만 배우로서 산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걸 느낄 때가 있어요. 어떤 작품을 하는지, 어떤 배역을 맡았는지 그리고 대중의 반응이 어떤지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거든요. 배우가 된 건 인간 류혜영의 행복을 위해 직업으로 선택한 것뿐인데 가끔은 그 두 가지 류혜영의 경계가 모호해져서 헷갈릴 때가 있어요. 작품과 연기에 집중해야 하는 건 분명하지만 그래도 저 자신의 행복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혼란스러울 땐 어떻게 극복하나요? 음악을 들어요. 요즘에는 특히 클래식 음악에 빠져 있죠. CD를 잔뜩 구해다가 틀어놓고 계속 들어요. 클래식이 정말 신기한 게, 들을 때마다 기분에 따라 다르게 들려요. 이제 공연도 찾아다니려고요.

스스로의 행복에 대해 고민하고, 클래식을 찾아 듣는 배우라니, 매력적이네요. 스스로 자신이 어떤 배우라고 생각해요? 하얀 도화지 같은 연기자가 좋은 배우라는 말이 있지만 저는 도화지가 아니라 물감 팔레트 같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제게 붓을 쥐여주면 어떤 색깔이든 새롭게 표현해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비록 한두 가지 물감만 채워져 있지만 앞으로 더 많은 색의 물감을 담고 싶어요.

김강우, 치앙마이의 숲을 걷다.

10-0122
화이트 포켓 반팔 티셔츠 6만9천원, 그레이 카고 팬츠 18만9천원 모두 지프브랜드(Jeep Brand), 브레이슬릿 모두 티에르(Thiers).
베스트 19만9천원, 터틀넥 풀오버 18만9천원, 청바지 14만9천원 모두 지프브랜드(Jeep Brand), 브레이슬릿 모두 티에르(Thiers), 선글라스 발맹(Balmain).
베스트 19만9천원, 터틀넥 풀오버 18만9천원, 청바지 14만9천원 모두 지프브랜드(Jeep Brand), 브레이슬릿 모두 티에르(Thiers), 선글라스 발맹(Balmain).
셔츠형 다운 재킷 27만9천원, 니트 터틀넥 풀오버 18만9천원, 청바지 14만9천원 모두 지프브랜드(Jeep Brand).
셔츠형 다운 재킷 27만9천원, 니트 터틀넥 풀오버 18만9천원, 청바지 14만9천원 모두 지프브랜드(Jeep Brand).
체크 포켓 셔츠 14만9천원, 카고 팬츠 17만9천원 모두 지프브랜드(Jeep Brand), 브레이슬릿 모두 티에르(Thiers), 선글라스 발맹(Balmain).
체크 포켓 셔츠 14만9천원, 카고 팬츠 17만9천원 모두 지프브랜드(Jeep Brand), 브레이슬릿 모두 티에르(Thiers), 선글라스 발맹(Balmain).

치앙마이에서 세 장의 손편지가 도착했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 보낸 질문에 대한 회신이다. 단정한 필체, 한 박자 쉬며 찍었을 방점, 몇 번의 말줄임표와 웃음 표시 사이에서 인적 드문 마을의 무탈하고, 태평한 공기가 전해졌다. 그는 종종 ‘직업 배우’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어딘가 ‘직업 군인’처럼 들리는 이 생소한 단어에서 그가 배우로서 연기라는 책무를 어떤 방식으로 대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김강우는 어느 날 재능이 툭 불거져 나온 신동도, 대의명분을 품은 투사형 배우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직업인’이 그러하듯 출퇴근 시간을 지키고, 오늘 반드시 해야 하는 업무 전화를 걸 듯 그는 연기를 한다. 김강우만의 ‘직업의식’은 ‘연차’가 올라갈수록 동년배 배우들과 차이를 만들었다. 요령만 늘어버린 능청스러운 기교나, 산전수전 다 겪은 듯한 기계적인 표정, 대충 눙치거나 얼버무리는 애드리브 없이 정도를 따른다. 어떻게 배역에 몰입하고 준비하느냐는 질문에 “노하우는 없다.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등바등한다”는 그의 문장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15년 차 배우가 여전히 ‘아등바등’ 중이라니.

김강우에게는 억지스러운 면이 없다. 일부러 낙천적으로 보이려 애쓰거나 소탈한 척하지 않고 지나치게 예민하지도 무디지도 않다. 다섯 살 아역 배우에게까지 ‘비범’의 잣대를 들이대는 배우의 세계에서 김강우는 담담하게 걷는다. 그는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무리한 배역을 감당하거나, 기대와 우려에 잠식돼 섣불리 공백을 갖지 않았다. 차분히 필모그래피를 채웠고, 안정된 가정을 꾸렸다. 올해 상반기는 배우 김강우의 연기가 가장 많이 회자된 해다. 그는 영화 <간신>을 통해 자신의 연기 인생에서 가장 지독한 캐릭터인 연산군으로 분했다. 영화 <카트>의 비정규 노동자를 지지하는 정규직 사원, <찌라시: 위험한 소문>의 억울하게 죽은 여배우를 대신해 진실을 찾는 매니저, <사이코메트리>의 형사를 시작으로 드라마 <실종느와르 M>의 FBI 출신 특수실종전담팀 팀장 등 전작들의 인물과 비교하면 낯선 선택임이 분명했다. 그는 연산군의 광기에 집중하기보다 어미를 잃은 아이의 애처로움, 태생적 결핍이 만든 선천적인 불안, 아름다움을 탐닉하는 자의 그림자에 초점을 맞췄다. 자발적이고, 독창적인 해석과 표현은 대중과 평단의 고른 지지를 받으며 ‘국민 형부’의 흔적을 완벽하게 지웠다.

지난 2~3년간의 행보에 대한 질문에 ‘만족도 후회도 없다’고 짧게 답한 김강우. 서핑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그는 어쩌면 두 아들과 함께 곧 파도에 몸을 실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회신을 읽고 난 뒤 김강우의 단단한 균형은 명확한 삶의 우선순위 덕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말대로 배우가 직업이고, 좋은 인간으로 살아내는 것이 배우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예술이라면 그는 지금 그 정점에 가까워지고 있다.

지난 3년간 매년 2~3편의 작품을 선보였다. 오래달리기를 하다가 문득 자리에 선 기분일 것 같다. 근 몇 년간 열심히 작품을 했다. 정신없이 달리다 보면 속도를 느끼는 감각에도 내성이 생기지 않나. 당시에는 미처 몰랐는데 돌아보니 육체보다 정신이 더 지쳐 있지 않았나 싶다.

2012년에 <두 남자의 거침없는 태국 여행>이라는 여행책을 냈을 정도로 태국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치앙마이의 첫인상은 어떤가? 지쳐 있다 보니 태국 생각이 더 간절하지 않았나 싶다. 예전부터 태국을 좋아했다. 처음 태국을 여행한 이후부터 매년 두세 번은 오게 되더라. 혼자 즐기기만 하려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서툴게 책도 썼다. 태국은 어디 하나 빠지는 게 없다. 바다와 가깝고, 음식과 숙소 등 휴식을 위한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었다. 주로 바다를 접한 태국 도시들을 찾았었기에 치앙마이에 대한 환상도 컸다. 친절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일상이 1년 내내 이어질 것 같은 곳이다. 무엇보다 공기가 좋다. 잠을 조금 잤는데도 피곤한 느낌이 없다.

‘여행은 남편이자 아버지인 김강우로 돌아가는 중간 과정’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배우의 삶에서 여행은 어떤 의미인가? ‘직업 배우’는 한 작품을 끝내고 다시 가정의 일원으로 돌아가면 살짝 어색함을 느낀다. 그렇다고 작품을 하는 동안에는 가족의 일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의미는 아니다.(웃음) 집도 많이 비우고 몇 달 동안 크고 작은 가족 행사들을 건너뛰다 보니 혼자 붕 떠 있는 느낌이랄까. 일종의 직업병이다. 집으로 다시 안착하기 전 여행을 하면 내면이 정리되는 기분이 든다. 나로, 남편으로, 아버지로 복귀하기 위한 혼자만의 과정 같다. 집에 있는 동안에는 최대한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일상으로 ‘투입’되기 전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여행이라고 해서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보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먹고, 자고, 책 읽고, 하늘 보고, 음악 듣는다. 무엇보다 그렇게 쉬고 돌아와야 혈기 왕성한 두 사내 녀석들과 놀아줄 수가 있다.

가족과 배우, 이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삶이 움직이는 것 같다. 작품을 끝내고 그간 못 만났던 사람들과 술도 마시고, 운동도 한다. 뭐··· 동네 한량이다.(웃음)

남편과 아버지의 역할에 충실하기 때문일까. ‘연예인처럼’ 사는 것을 극도로 자제하는 것 같다. 연예인이라는 단어 자체에 거부감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직업 배우’일 뿐이다. 가정에서는 평범한 남편이자 아빠이고 싶다. 내 직업 때문에 아이들이나 아내의 일상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일할 때 이외에는 배우라는 사실도 종종 잊고 산다. 노력한 건 아닌데 어느 순간 그렇게 되더라. 지금의 생활 리듬이 편안하다.

영화 <간신>에서는 연산군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과 표현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역할을 치밀하게 준비하고 공부하는 성실한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일반적으로 슛이 들어가기 전까지 인물을 어떻게 준비하나? 지금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준비 과정은 매번 다르다. 어떨 때는 스스로를 단단히 조이기도 하고, 어떤 작품에서는 마음껏 풀어놓기도 한다. 노하우는 없다.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등바등한다. 지금은 다음 역할을 받아들이기 위해 멍하게 스스로를 비우고 있다.

곧 마흔이다. 멋진 중년이란 어떤 모습의 남자일 것 같나? 스스로 멋있어지려고 노력한다고 ‘멋’이 생기는 건 아닐 거다. 나잇값 하는 마흔의 남자이고 싶다.

다음 여행지는 어디인가? 두 아들과 떠나는 한 달간의 배낭여행. 목적지는 중요치 않다. 5년만 있으면 가능하려나?

다운 점퍼 가격 미정, 니트 풀오버 19만9천원 모두 지프브랜드(Jeep Br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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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터형 셔츠 17만9천원, 화이트 반팔 티셔츠 5만9천원 모두 지프브랜드(Jeep Br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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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 점퍼 59만9천원, 체크 셔츠 18만9천원, 청바지 14만9천원 모두 지프브랜드(Jeep Br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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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딩 재킷 29만9천원, 카고 팬츠 17만9천원 모두 지프브랜드(Jeep Brand), 브레이슬릿 모두 티에르(Thi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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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다운 점퍼 가격 미정 지프브랜드(Jeep Br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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