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남자 박유환

체크무늬 코트, 브라운 카디건 모두 멜린다 글로스 바이 비이커(Melinda Gloss by Beaker), 팬츠 바레나 바이 비이커(Barena by Beaker).
체크무늬 코트, 브라운 카디건 모두 멜린다 글로스 바이 비이커(Melinda Gloss by Beaker), 팬츠 바레나 바이 비이커(Barena by Beaker).

드라마 주인공 남녀의 사연 많은 밀당 스토리에 조금씩 지쳐갈 때, 탁 치고 나오면서 때론 코믹하게, 가끔은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조연 커플의 러브 라인이 반갑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에서 고백부터 뽀뽀까지 제법 빠르게 진도를 빼던 속 시원한 커플이 있었다. 바로 작품 속 배경이 된 <모스트> 편집팀의 두 막내 ‘준우’와 ‘한설’이다. 회가 거듭될수록 주인공 커플 못지않게 이 두 사람의 뒷이야기가 점점 더 궁금해졌고, 새침한 듯 귀여운 한설과 더없이 순진해서 매력적이던 준우가 이루는 ‘케미’는 산뜻했다. 토끼 같은 눈으로 헤벌쭉 웃으며 동생같이 귀엽게 굴다가도,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부단히 애쓰는 준우는 금세 여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남자다. 이런 준우를 특유의 사랑스러운 매력을 더해 연기한 배우 박유환. 드라마 속에서 방금 빠져나온 듯 해맑게 웃으며 말을 걸어오는 그를 만났다.

블랙 터틀넥 니트 톱 유니클로(Uniqlo).
블랙 터틀넥 니트 톱 유니클로(Uniqlo).

<모스트> 매거진의 패션팀 어시스턴트로 열심히 뛰어다니던 준우가 오늘은 화보 촬영의 주인공이 되어 나타났네요. 신기해요. 모든 스태프가 어떤 역할을 맡는지, 화보 촬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흐름이 잘 읽혀서 반가워요.

오늘이 <모스트>의 화보 촬영 날이라면 준우는 지금 뭘 하고 있었을까요? 절대 이렇게 못 앉아 있죠! 분주하게 소품을 챙기고 모델들의 의상을 열심히 정리하고 있어야죠.(웃음)

워낙 반응이 좋기도 했고, 준우라는 캐릭터를 통해 새로운 박유환을 보여줄 수 있었던 드라마라 보내기 아쉬웠을 것 같아요. 어떤 작품이든 시작하면 무조건 끝이 있고, 그때마다 늘 아쉽긴 한데 <그녀는 예뻤다>는 유난히 더 그러네요. 이번 작품을 찍을 땐 매일같이 설레었어요. 한설과 러브 라인을 만드는 것도 두근거렸고, 편집팀 선배들과 지내는 것도 좋았죠. 드라마에서처럼 실제로도 다들 흥이 많아서 늘 즐겁게 어울렸거든요.

연기를 시작한 계기는 뭔가요? 스무 살 무렵이었을 거예요. 하고 싶은 일이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아서 의미 없이 지내던 어느 날, 유천이 형이 연기 연습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고 처음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날부터 꾸준히 기본기를 배웠고, 차츰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활동하기 시작했죠.

형이 드라마 모니터도 가끔 해주나요? 제 방에 들어와 제가 연기한 준우를 흉내 내면서 장난을 치기도 해요.(웃음) 형하고 연기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안 해요. 마주 앉아 그런 얘기 하는 건 왠지 좀 쑥스럽더라고요. 그냥 가끔 둘이 집에서 술 한잔하면서 ‘이번에 그 연기 좋더라’ 가볍게 이야기하는 정도예요. 그래도 조용히 뒤에서 지켜봐주는 형 덕분에 항상 든든해요.

박유천의 동생으로 받는 사람들의 관심, 형의 존재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을 것 같아요. 전혀 없어요. 우린 가족이잖아요. 가족의 존재가 부담스러울 리가 없죠. 다만 어릴 때, 그러니까 제가 연기자가 되기 전에는 사람들의 관심이 벅찰 때도 있긴 했어요. 하지만 성인이 되고, 제가 좋아하는 일을 시작한 뒤에는 전혀 불편하지 않았어요. 형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제가 맡은 일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단숨에 인기를 얻는 스타가 되기보다는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배우 박유환의 이름으로 한 계단 한 계단씩 천천히 올라가고 싶어요.

형을 보며 열정을 키워 도전한 연기. 몇 년간 직접 해보니 어떤가요? 작품을 찍을 때마다, 한 캐릭터씩 맡을 때마다 진정한 제 모습을 찾아가는 느낌이 들어요. 희한해요. 분명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저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베이지 니트 스웨터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팬츠 솔리드 옴므(Solid Homme), 블랙 스니커즈 이티스(Eytys), 스트라이프 양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베이지 니트 스웨터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팬츠 솔리드 옴므(Solid Homme), 블랙 스니커즈 이티스(Eytys), 스트라이프 양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로맨스가 필요해 3>와 <그녀는 예뻤다>에서 경쾌한 캐릭터를 연기했으니 이젠 성격이 다른 인물이 욕심날 것 같아요. 특정한 장르나 역할이 욕심난다기보다는 그냥 원래 제 목소리 톤으로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를 한번 맡아보고 싶어요. 준우가 되었을 땐 늘 높은 목소리 톤으로 대사를 했는데, 제 진짜 목소리는 좀 낮고 차분한 편이거든요. 나긋나긋한 말투로 연기할 수 있는 일상적인 인물을 맡아보고 싶어요.

전작을 끝내고 이번 드라마로 돌아오기까지 쉬는 기간이 꽤 길었어요. 많이 쉬었어요. 가까운 사람들도 만나고, 여행도 여러 번 다녀왔죠. 혼자 생각을 많이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어요. 제가 낯을 많이 가려요.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면서 외로운 시간을 갖는 걸 좋아하죠.

의외예요. 잘 웃고 밝아서 늘 주변이 북적북적 붐비는 사람일 거라 생각했어요. 조금씩 그렇게 변해가는 중이에요. 연기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사람이 많은 곳에 가는 걸 불편해하고 친한 사람들만 조용히 만나는 스타일이었는데, 여러 작품을 찍으면서 성격이 밝아졌죠.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도 알아가고,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배우는 점도 많고요. 일종의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차츰 성장해가는 것 같아요.

<그녀는 예뻤다>의 준우는 늘 생기 넘치고 활달한 캐릭터였어요. 좋아하는 여자의 말이라면 뭐든 들어주는 준우. 요즘 애완남, 포켓남으로 불리던데 마음에 들어요? 좋죠. 준우랑 잘 어울리는 말이잖아요. 제 실제 모습은 그렇지 않아서 좀 오글거리긴 하지만요.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도 다들 절 얼마나 놀렸는데요. 제가 도착하면 ‘와, 포켓남이다!’ 하면서요.(웃음)

어떤 부분이 그렇게 오글거렸어요? 편집팀에서 일하는 장면을 찍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내가 다니는 회사다, 나는 팀의 막내다’라고 생각하는 게 편했거든요. 그런데 한설에게 애정 표현을 하는 신은 꽤 힘들더라고요. 특히 마지막 회에서 ‘결혼은 너 원할 때 언제든지 하자’ 하는 대사에 귀여운 애드리브를 섞는 부분이요. 그런 대사를 순진한 말투와 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해야 하니 참 쑥스럽더라고요.

준우 말고 실제 박유환은 연애할 때 어떤 남자일지 궁금해요. 여자친구가 좋아하는 건 다 받아들이는 스타일이에요. 두 사람이 연애할 땐 서로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것과 아무리 가까워도 예의를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번 사랑에 빠지면, 마음 가는 대로 솔직하게 표현하고 좋은 만큼 행동에 옮기는 편이에요. 아, 준우가 그랬던 것처럼 여자친구가 코 푼 휴지를 치우고 화장실 악취를 참는 건 실제로도 아무렇지도 않게 해줄 수 있어요. 사랑하면 뭐든 다 괜찮아요.

어떤 연애를 꿈꾸나요? 저는 꽤 ‘순수’한 연애관을 가진 남자인 것 같아요. 그렇다고 ‘순진’하지는 않죠.(웃음) 몇 번의 사랑을 겪으면서 다치기도 하고, 꿈 같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어요. 그런 경험으로 배운 것도 많아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연애는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긍정적이고 밝은 관계예요. 초기에 뜨겁게 사랑하다 권태기도 겪고, 또 관계가 지속되면서 정도 들고. 그렇게 서로에게 스며드는 일상적인 연애의 흐름이 좋아요. 오랜 시간 가까이 두고 보면서 같이 발전해나가는 그런 연애요.

시끌시끌했던 올해가 끝나가네요. 박유환에게 2015년은 어떤 해로 기억될까요? 앞으로 더 열심히 나아갈 수 있는 탄력을 받은 시간. 올해는 정말 좋은 에너지를 많이 얻었어요. 나 자신을 위해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유난히 자주 한 해였죠.

스물셋, 아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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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라인 패치워크 레이스 코튼 실크 드레스 버버리 런웨이 컬렉션(Burberry Runway Collection).
A라인 패치워크 레이스 코튼 실크 드레스 버버리 런웨이 컬렉션(Burberry Runway Collection).
컷아웃 코튼 실크 블렌드 시프트 드레스 버버리 런웨이 컬렉션(Burberry Runway Collection).
컷아웃 코튼 실크 블렌드 시프트 드레스 버버리 런웨이 컬렉션(Burberry Runway Collection).
A라인 플로럴 레이스 메시 드레스 버버리 런웨이 컬렉션(Burberry Runway Collection).
A라인 플로럴 레이스 메시 드레스 버버리 런웨이 컬렉션(Burberry Runway Collection).
A라인 패치워크 레이스 코튼 실크 드레스 버버리 런웨이 컬렉션(Burberry Runway Collection).
A라인 패치워크 레이스 코튼 실크 드레스 버버리 런웨이 컬렉션(Burberry Runway Collection).
마크라메 레이스 패널 드레스 버버리 런웨이 컬렉션(Burberry Runway Collection).
마크라메 레이스 패널 드레스 버버리 런웨이 컬렉션(Burberry Runway Collection).
필 쿠페 이탤리언 레이스 시프트 드레스 버버리 런웨이 컬렉션(Burberry Runway Collection).
필 쿠페 이탤리언 레이스 시프트 드레스 버버리 런웨이 컬렉션(Burberry Runway Collection).
언라인드 캐시미어 코트 버버리 런웨이 컬렉션(Burberry Runway Collection).
언라인드 캐시미어 코트 버버리 런웨이 컬렉션(Burberry Runway Collection).
마크라메 레이스 패널 드레스 버버리 런웨이 컬렉션(Burberry Runway Collection).
마크라메 레이스 패널 드레스 버버리 런웨이 컬렉션(Burberry Runway Collection).
체크 울 캐시미어 블랭킷 판초 버버리(Burberry), 마크라메 레이스 패널 드레스 버버리 런웨이 컬렉션(Burberry Runway Collection).
체크 울 캐시미어 블랭킷 판초 버버리(Burberry), 마크라메 레이스 패널 드레스 버버리 런웨이 컬렉션(Burberry Runway Collection).
켄싱턴 핏 캐시미어 트렌치코트, 체크 캐시미어 스카프, 버클 디테일 가죽 앵클부츠 모두 버버리(Burberry), 마크라메 레이스 패널 드레스 버버리 런웨이 컬렉션(Burberry Runway Collection).
켄싱턴 핏 캐시미어 트렌치코트, 체크 캐시미어 스카프, 버클 디테일 가죽 앵클부츠 모두 버버리(Burberry), 마크라메 레이스 패널 드레스 버버리 런웨이 컬렉션(Burberry Runway Collection).

이종석의 숨 고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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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티컬 체크 패턴의 자카드 오버사이즈 니트 코트, 화이트 셔츠, 타이, 네크리스, 스트라이프 팬츠 모두 디올 옴므(Dior Homme).

이종석은 언제나 달리고 있었다. <학교 2013>부터 그 속도가 빨라지더니 <너의 목소리가 들려>부터 <피노키오>까지는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리고 지금은 잠시 숨을 고르는 중이다. 자신이 너무 빨리 소진될까 두려워 한숨 고르기로 결심한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쉬어보니 모든 걸 쏟아내 뜨겁게 연기하는 순간이 너무 빨리 그리워졌다. 그 공백기의 한가운데에서 파리에 다녀온 이종석을 만났다. 편한 트레이닝팬츠를 입은 채 카페에 들어선 이종석은 머리가 좀 자란 듯했다. 그는 요즘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자신이 출연한 작품이 재방송되고 있으면 밤을 새워 보기도 하고, 여전히 배우를 꿈꾸는 학생들과 같이 연기 수업을 듣고, 또 매일같이 운동을 하며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그러면서 자신에 대해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은 참이다. “이제 깨달았어요. 나는 쉬는 것보다는 열심히 연기하는 순간을 좋아한다는 걸요. 쉬기 시작한 지 딱 3개월째부터 연기가 하고 싶어 미칠 것 같았어요.” 아마도 내년엔 우리는 다시 전속력으로 달리는 이종석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는 지금 그 전에 숨 고르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의 뜨거운 나날을 위해, 잠시 평범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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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지 울소재의 더블 브레스티드 롱 코트, 데님 팬츠 모두 디올 옴므(Dior Homme).

파리에서의 여정은 어땠나? 사실 여행하는 것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보통 여행을 가서도 오후 12시 넘어서 일어나 느릿느릿 움직인다. 그래도 이번에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이곳저곳 다녔다. 몽마르트르에도 올라가고 에펠탑도 보고 그랬다.
<피노키오>가 끝나고 한참을 쉬어가는 느낌이다. 맞다. 죽을 것 같다. (가슴을 가리키며) 여기, 이 속에 있는 연기 열정을 쏟을 곳이 없다니. 어제도 새벽 4시부터 <피노키오>를 3회 연속 재방송을 하길래 아침까지 밤을 새워 봤다. 촬영 당시 했던 대사를 따라 하면서. 지금 이렇게 연기하지 않는 시간이 아깝다.

더블브레스티드 턱시도 재킷, 새틴 라이닝 디테일 팬츠, 턱시도 셔츠 모두 디올 옴므(Dior Homme).
더블브레스티드 턱시도 재킷, 새틴 라이닝 디테일 팬츠, 턱시도 셔츠 모두 디올 옴므(Dior Homme).

일부러 좀 오래 쉬는 건 아닌가? 그동안 놀랄 만큼 드라마와 영화에 골고루 출연해왔다. 처음에는 그랬다. 배우가 드라마를 1년에 두 편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렇게 다작을 하다가는 대중이 나를 지겨워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조금 쉬었다가 보여주고 싶었다. 작품을 고를 때 고민도 더 많이 하려고 했고, 좀 더 새로운 연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데뷔 당시부터 드라마와 영화를 골고루 해온 터라 <피노키오>가 끝난 다음에는 영화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주연이 아니더라도 선배들과 함께 연기할 기회를 기다렸다. 아, 그런데 올해를 이렇게 흘려보내게 될 줄이야. 너무 충격적이다.(웃음)
다음 작품으로 바라는 장르가 있나? 장르와 상관없이 선배들과 함께 하는 작품이라면 어떤 것이든 도움이 많이 된다. <관상> 때도 그랬다. 사실 <관상>을 찍을 때만 해도 욕을 엄청 먹었다. 그때는 신인이었고, 연기할 때 위축되는 면도 있었다. 연기 경험이 많지 않을 때이다 보니 부족한 점도 많았다. 그때는 <관상>의 내 연기를 보는 게 괴로울 정도로 불만족스러웠지만 지금은 말할 수 있다. 그 이후로 굉장히 발전했다고. 아마 그때쯤 내가 내 연기에 대해 뭔가 각성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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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스트라이프 수트, 글렌 체크 니트 베스트, 화이트 셔츠 모두 디올 옴므(Dior Homme).

어떤 각성? 선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옆에서 계속 보고 있으면 내 또래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과 확실히 다르다. 차원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 연기의 기술이 다르다. 선배들이 연기할 때 옆에서 연기의 기술이나 호흡 같은 것을 지켜보다 보면 습득할 수 있다. 물론 습득한다고 똑같이 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흉내 내다 보면 얼추 따라갈 수 있지 않겠나.

배우에게는 연기를 위해, 연기를 하지 않은 시간도 중요하다. 쉴 틈 없이 작품을 할 때도 또래 배우가 나오는 다른 작품을 굳이 챙겨 봤다. 뭐 하나라도 배울 게 있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한 시기를 살아온 사람들이 같은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알고 싶었다. 잘 봐두었다가 좀 써먹어야지, 뭐 이런 마음. 작품과 작품 사이에 쉬는 시간이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공부하면서 나를 채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다른 느낌이다. 지금 1년 가까이 공백기를 가진 건데, 이번에는 ‘다음 작품에는 이걸 써먹어야지’ 하는 게 잘 떠오르지 않는다. 공백기가 길어질수록 다음 작품을 할 때 어떤 무기를 들고 나서야 할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연기를 하지 않은 시간 동안 나 자신이 그다지 많이 채워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내 가장 큰 고민이다. 예전에는 작품과 작품 사이에, 딱 한 달을 쉬어도 충분히 충전되는 기분이었는데 말이다. 이런 생각도 든다. 혹시 그동안 너무 다작을 해서 내 영혼을 다 써버린 건 아닐까. 작품을 많이 할 때는 좀 쉬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딱 3개월 쉬고 나서 알았다. 나는 쉬지 않고 연기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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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시미어 칼라 블랙 트렌치코트, 화이트 셔츠, 아티클 패턴의 브이넥 니트 톱, 블랙 팬츠, 옐로 러버 솔 슈즈 모두 디올 옴므(Dior Homme).

요즘도 계속 연기 수업을 받고 있나? 매주 신인 친구들이랑 수업을 하고 학교에서도 연기 수업을 듣는다. 정말 재미있다. 학교에서는 대부분 배우 경험이 없는 학생들과 수업을 듣는다. 기술적으로는 내가 나을지 몰라도 그들이 연기하는 걸 보고 있으면 조금 서툴러도 참 좋다. 함께 수업을 듣는 학생 중에 중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친구가 있는데, 한국어는 어눌하지만 연기할 때면 그 감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내가 연기할 차례가 되면 정말 열심히 하게 된다. 나를 얼마나 주의 깊게 보겠나. 나는 발성이 약한 편인데 수업할 때는 어찌나 또박또박 말하는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발음 좋다고 칭찬까지 받았다. 내가 사실 말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말하는 게 귀찮다고 해야 하나? 평소에도 발음을 좀 흘리는 편인데, 집에서도 웬만하면 전화도 잘 안 받고 문자로 해결한다.
자기 자신을 그렇게 객관적으로 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칭찬에 익숙한 게 스타 아닌가. 자신의 단점을 그렇게 명확하게 설명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난 사실 열등감이 되게 많은 사람이다. 특히 내가 잘하고 싶고 욕심내는 것에 대해서는 더 그렇다. 그래서 더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그래야 못하는 걸 억지로 하지 않는 대신 내가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해낼 수 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나는 다른 배우에 비해 목이 트이지 않아서 소리를 지르는 연기가 잘 안 된다. 그래서 대본에 그런 장면이 나오면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거다. 모니터링도 열심히 한다. 내가 출연한 작품을 자주 돌려 본다. 내가 연기한 장면을 계속 돌려 보다 보면 화면 속 내가 마치 제3자처럼 보인다. 그러면 내 연기가 매우 객관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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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비 블루 핀스트라이프 수트, 화이트 셔츠, 블루 라이닝 디테일 캐시미어 롱 베스트, 더비 슈즈 모두 디올 옴므(Dior Homme).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을 가꾸기 위한 노력도 하나? 남자 배우들은 쉬는 동안 몸을 만드는 데 열중하기도 한다. 운동은 거의 매일 한다. 쉬는 동안 몸이나 한번 제대로 만들어보자는 마음에 벌크업 운동도 했다. 요즘 몸이 너무 커진 것 같기도 해서 잠시 쉬는 중이다. 승마랑 클라이밍도 배워봤는데 그만뒀다. 승마는 생각보다 엉덩이가 아팠고, 클라이밍을 했더니 손가락이 막 다 까지는 거다.(웃음)
사실 이곳에 들어섰을 때 당황했다. 머리도 한참 안 자른 것 같고 해서. 머리를 자른다고 딱히 할 일이 있는 게 아니니까 자르지 않았다. 그리고 조만간 어떤 작품을 하게 될지도 모르지 않나. 일단 기르는 중이다. 작품에 들어가게 되면 머리를 길러야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때 가서 헤어피스라도 붙이면 되지. 그러면 어색하고 이상해 보인다. <관상> 찍을 때도 실제로 머리를 길러서 촬영할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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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 클래식 싱글 수트, 옐로 라이닝 디테일 메시 스티치 니트 베스트, 타이, 화이트 셔츠 모두 디올 옴므(Dior Homme).

연기는 하면 할수록 쉬워지는 것 같나? 아니.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정말 심각하게. 데뷔 당시보다 지금이 더 떨린다.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는 상대 배우와 시선을 맞추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초점이 자꾸 상대방의 눈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양쪽 눈을 바라보는 게 힘들어서 언제부턴가 한쪽 눈을 보며 연기하는 거지. 카메라를 통해 볼 때 티가 나진 않겠지만 상대방의 오른쪽 눈만 바라본다. 그러다 보면 상대방의 감정을 온전히 다 받을 수가 없다.
생각이 너무 많다. 조금 무모하고 자만해도 되는 나이다. 맞다. 연기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나는 직관적으로 연기하지 않는다. 고경표와 학교에서 연기 수업을 같이 듣는데, 같은 대본으로 연기하는 데도 그 친구와 내 연기 스타일이 많이 다르다. 나는 장면과 동선을 철저히 분석하고 연기하는데 그 친구는 동물적인 본능으로 연기한다. 나에게 없는 재능이다. 그런 재능을 가진 배우를 보면 동경하게 된다. 나는 아직도 연기할 때 내가 짜놓은 틀에서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창피해서 얼굴이 빨개진다. 부끄럽고 괴롭다. 잘하고 싶은 욕심에 그러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선배 배우들 인터뷰 찾아 보는 걸 좋아한다.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고민을 읽으면 힘이 많이 된다. 아, 선배들이 얘기한 게 이거였구나,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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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도 컬러의 피코트, 화이트 셔츠, 데님 스키니 팬츠 모두 디올 옴므(Dior Homme).

선배들처럼 나이가 든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있나? 많이 한다. 이번에 파리에서 화보 찍을 때 모니터링을 하는데 얼굴에 팔자주름이 보이는 거다. 충격이었다. 그래서 호텔에서 많이 생각해봤는데 왠지 나는 멋있게 늙지는 못할 것 같다. 주름이 멋있는 남자 배우가 못 될 것만 같다.
뭐가 두렵나? 또래 배우보다 외모가 망가지는 역할도 많이 했는데. 더벅머리로 나온 적도 있고, 1970년대 촌스러운 교복을 입고 등장한 적도 있다. 일부러 그런 캐릭터를 골랐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끝나고 사람들이 나를 ‘라이징 스타’로만 볼까봐 두려웠다. 나는 진짜 배우가 되고 싶은데 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이만큼 할 수 있어’ 하고 보여주고 싶었다. 무게 잡고 멋있기만 한 역할 말고, 망가지는 캐릭터라면 배우로서 내 가능성을 좀 더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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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님 더블 롱 코트, 화이트 셔트, 램스킨 와이드 드로스트링 팬츠, 스니커즈 모두 디올 옴므(Dior Homme).

내년에는 좀 달라지고 싶은 점이 있나? 나는 낯선 사람들과 있는 게 어색하다. 선배 배우에게도 먼저 다가가고 싶은데 마음이 편치 않다 보니 낯선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 가면 얼굴이 막 빨개진다.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그래서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말할 때면 죽을 만큼 힘들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 어떻게 진심을 담아 빨리 말하고 내려갈지를 고민한다. 수상 소감도 성의 없어 보이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짧게 한다. 이제 좀 변하고 싶다. 선후배들에게 내가 먼저 다가가 연기에 대한 조언도 듣고 싶고, 고민을 나눌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직까지는 쉽지 않다. 그래서 팬들의 말에 귀 기울인다. 팬들은 내게 가장 힘이 되는 존재이기도 하고.
그래도 친구들 앞에서 이종석은 좀 편해지겠지. 친구들과 함께 있는 이종석은 어떤 모습일까? 글쎄. 나는 친구들이랑 밥을 먹고 계산할 때 장난으로라도 서로 밥값을 내라며 미루는 게 싫다. 예전에 돈이 없을 때도 그랬다. 차비가 없을지언정 내가 내고 말지, 뭐 이런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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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님 포인트 칼라의 블랙 맥시 롱 코트, 화이트 셔츠, 타이, 블랙 팬츠, 더비 슈즈 모두 디올 옴므(Dior Homme).

벌써 올해의 마지막 달을 앞두고 있다. 2015년은 이종석에게 어떤 해로 기억될까? 기억나지 않을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없다. 작품을 한 해에는 작품을 기억하면 그해가 떠오른다. 올해는 남겨놓은 게 없는 기분이다.
내년에는 바빠지겠다. 내년에는 다작할 거다. 쉬어보니 다작이 정답이었다. 나는 쉬면 안 되는 사람이라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시간이 많다고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머릿속이 온갖 다양한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 이걸 다 비워내고 작품에 대한 생각만으로 채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