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 내기 10초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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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상사가 내 마음을 뜨겁게 한다. 저녁 5시, 급하게 나를 부르더니 내일 오전까지 제출해야 할 보고서를 작성해 자기 책상 위에 올려놓고 퇴근하라는 말을 남기고 사무실을 나간다. 오늘도 야근이다. 텅 빈 사무실에 홀로 앉아 오늘의 숙제를 마치고 나면 내일 아침 내 상사는 그 보고서를 그대로 자신의 상사에게 제출할 것이다. 익숙한데도 매번 점점 분노 지수는 가파르게 올라간다. 그럴 때면 나는 열심히 메일을 쓴다. 보고서를 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키보드가 부서져라 두드린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내가 너 때문에 관둔다. 너나 다녀.’ 받는 이는 내 상사, 참조에 내 상사의 상사. 그러는 동안 화가 조금 가라앉고 나면 수신인을 모두 지우고 메일을 임시 보관함에 보관한다. 내일 출근하자마자 한 번 더 읽고 휴지통에 버릴 거다. 내 옆자리 동료 P는 키보드 아래 사직서라고 적힌 봉투를 마치 부적처럼 깔아둔다. 요즘 세상에 사표를 직접 적어 제출하는 경우는 없으니 진짜 사표는 될 수 없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사표를 내지 않기 위한 아날로그적 감성의 부적인 셈이다.

직장생활 5년 차에 접어든 K는 오늘도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린다. 오늘 퇴사할 경우 받을 수 있는 퇴직금을 계산하는 중이다. 시간이 남으면 실업급여도 계산해본다. 그럼 대충 한달에 놀고먹으면서 얼마 정도 쓸 수 있는지 딱 계산이 나온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아, 퇴직금이 딱 백만원만 더 쌓이면 관둬야지.’ 상상에 공상을 더해 망상으로 이어지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퇴직금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상상해본다. 이 의식은 매우 씁쓸하고 초라하게 끝난다. 미생의 퇴직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거창하지 않다. 평생의 꿈인 세계 일주를 떠나면 지구의 반 바퀴도 돌지 못한 채 돌아와야 하는 금액이고, 당장 다음 달이면 돌아오는 월세 재계약을 하기에도 모자라는 돈이다.

K의 이야기를 듣던 L이 돈을 모을 생각 하지 말고 먼저 써버리라고 조언한다. L은 대리 시절에 드림카 한 대를 뽑았다. 딱 매너리즘에 빠진 때였다. 직장 동료와도 잘 지냈고, 그동안 사표를 내던지고 싶을 때마다 자동차 할부 금액을 떠올리며 넘겼다. 팀장과 딱히 트러블도 없었다. 그냥 직장생활이 지루해졌을 뿐이다. 그래서 새 차를 뽑아 빚더미에 당당히 올랐다. 그렇게 월급 노예가 되어 계속 일을 하다 얼마 전에는 팀장까지 되었다. 팀장이 된 L은 후배가 좋은 차를 사면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다. ‘혹시 요즘 힘든 일이 있나’, ‘회사를 관두고 싶어서 저러나’ 싶어서다. 동시에 또 한 명의 월급 노예가 생겼다는 동질감도 든다.

한편 작은 그래픽디자인 회사에 다니는 C는 얼마 전 회사 주차장에서 발견한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사무실에서 키우는 중이다. 그 동네 캣맘이던 C는 엄마도, 형제도 없이 혼자 남겨진 새끼 고양이에게 밥을 주기 시작했는데, 이 녀석이 C를 무척 잘 따랐다. 야근이 많아 집은 잠만 자는 숙소일 뿐 사무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그녀는 회사 사람들을 설득해 고양이를 사무실에서 키우기로 했다. 때는 잦은 야근에 지쳐 이직하기 위해 헤드헌터를 만나기로 한 전날이었다. C는 인터넷을 열어 고양이를 위한 이런저런 용품을 폭풍 주문한 후 헤드헌터에게 약속을 취소하는 문자를 보냈다. 꾹꾹이를 하는 그놈을 보며 오늘도 사무실에서 밤을 새운다.

당신만 그렇게 오늘 하루를 버티는 건 아니다. 많은 직장인이 야근을 하다 구인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경력직 채용 공고를 뒤져보기도 하고 대학원 입학 전형을 확인해보기도 한다. 화장실에 가서 친구랑 신나게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어마어마한 사업을 구상할 수도 있다. 퇴근길에 유학원에 상담을 하러 가서는 안내 책자만 잔뜩 들고 오기도 한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사표를 내던지지 않고 무사히 버틴다. 그러면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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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들의 호스텔

스테파니 파크룰(Stephanie Pakrul)이 자신의 침실에서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다. 그녀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아트와 IT, 섹스가 결합된 작업물을 만들어내는 아티스트다.
스테파니 파크룰(Stephanie Pakrul)이 자신의 침실에서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다. 그녀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아트와 IT, 섹스가 결합된 작업물을 만들어내는 아티스트다.
트웬티미션의 지하에는 IT와 디지털 업계의 동향을 전하는 유튜브 뉴스 프로그램 ‘머니 앤 테크(Money & Tech)’를 촬영하는 스튜디오가 자리하고 있다.
트웬티미션의 지하에는 IT와 디지털 업계의 동향을 전하는 유튜브 뉴스 프로그램 ‘머니 앤 테크(Money & Tech)’를 촬영하는 스튜디오가 자리하고 있다.
트웬티미션이 자리 잡은 20번가의 전경. 1980년대에는 남아메리카에서 이주한 빈민층과 무정부주의자들이 모여 살던 지역이었고, 1990년대 닷컴 붐이 일면서 IT 산업 종사자들이 차츰 모여들었다.
트웬티미션이 자리 잡은 20번가의 전경. 1980년대에는 남아메리카에서 이주한 빈민층과 무정부주의자들이 모여 살던 지역이었고, 1990년대 닷컴 붐이 일면서 IT 산업 종사자들이 차츰 모여들었다.
호스텔 입주자인 에밀리 에릭슨(Emily Erickson)과 그녀의 어머니 조앤 에릭슨(Joanne Erickson)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어머니날을 앞두고 딸을 찾아온 조앤은 넷플릭스의 브랜드 매니저다.
호스텔 입주자인 에밀리 에릭슨(Emily Erickson)과 그녀의 어머니 조앤 에릭슨(Joanne Erickson)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어머니날을 앞두고 딸을 찾아온 조앤은 넷플릭스의 브랜드 매니저다.
정신없는 분위기의 호스텔이지만 대부분의 입주자들이 출근하고 난 아침 시간은 매우 고요하다.
정신없는 분위기의 호스텔이지만 대부분의 입주자들이 출근하고 난 아침 시간은 매우 고요하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미션 스트리트(Mission Street)와 20번가가 맞닿는 길목에 자리한 2층 건물. 합판으로 만들어진 대문에 이렇다 할 간판도 없이 여러모로 날림으로 지어진 듯한 이곳은 지난 2012년 문을 연 ‘트웬티미션(20Mission)’이라는 호스텔이다. 남루한 외관을 하고 있지만, 이래 보여도 41개의 숙소는 거의 만실이다. 입주자들이 연중 주최하는 파티에는 1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루는 것으로 주변 이웃들에게 악명 높다. 입주자의 4분의 3은 IT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대부분이 20대 중·후반의 나이로, 스타트업 회사를 운영하는 공학도 출신의 벤처사업가들이다.

호스텔에서 가장 오래된 입주자 중 한 명인 앤드루 워드(Andrew Ward)가 세운 웹 마케팅 회사 칼라무나(Kalamuna)의 전경.
호스텔에서 가장 오래된 입주자 중 한 명인 앤드루 워드(Andrew Ward)가 세운 웹 마케팅 회사 칼라무나(Kalamuna)의 전경.

 

나머지 4분의 1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만으로 실리콘밸리의 차세대 거물이 되고자 하는 이들의 혈기에 이끌리듯 흘러든 젊은 아티스트들이다. 뭔가 한방 크게 사고 칠 것 같은 야심만만한 공학도 출신의 입주자들 덕분에, 이곳은 자연스레 ‘해커 호스텔’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트웬티미션을 처음 만든 사람은 전자 화폐 ‘비트코인’의 초기 투자자로서 수백만 달러를 번 전직 해병이자 IT 기업가 재러드 케나(Jared Kenna)다(그래서 이들은 숙박비를 비트코인으로도 받는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살 곳을 알아보던 그는 친구에게서 20년 가까이 버려져 있던 이 건물을 소개받았고, 몇몇 친구들과 함께 이곳을 호스텔로 개조했다. 마약중독자들이 모여 몰래 약을 투여하던 폐건물은 이제 엔지니어와 벤처 투자자들, 아티스트들이 영감을 주고받는 창조의 장이 되었다.

호스텔의 내부에 들어서면 고장난 전등을 방치해 어두침침한 복도가 펼쳐진다. 벽면은 스트리트 아트워크와 그래피티로 채워져 있고, 코너마다 있는 공용 욕실에는 물때 가득 낀 배수구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공용 주방의 냉장고에는 입주자들이 먹다 남은 음식들이 어지러이 쌓여 있다. 이런 풍경은 각자의 방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이곳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는 무질서와 혼돈이다. 환기, 정리 정돈, 식사 준비, 그런 일반적인 생활양식에는 아무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대신 이들이 몰두하는 것은 새로운 IT 기술에 대한 정보 공유라거나 자신의 벤처기업을 지원해줄 투자자 물색, 밤새 이어지는 댄스파티나 마리화나에 취해 듣는 기타 연주 같은 것들이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마치 부족의 삶 같아요. 사실 인간 본성에 비추어 보면 무리 지어 있는 환경보다 혼자 살며 독립 생활을 하는 게 더 자연스럽지 못한 일이라고 전 생각해요.” 입주자 중 한 명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벤 그린버그(Ben Greenberg)의 말이다.

스타트업 회사 Glowyshit.com을 운영하는 벤 그린버그(Ben Greenberg)가 자신의 방 스탠딩 데스크 앞에 서서 작업하고 있다. 야광 불빛으로 장식한 그의 방은 언제나 어둑하다.
스타트업 회사 Glowyshit.com을 운영하는 벤 그린버그(Ben Greenberg)가 자신의 방 스탠딩 데스크 앞에 서서 작업하고 있다. 야광 불빛으로 장식한 그의 방은 언제나 어둑하다.
주방은 호스텔 사람들의 사랑방과 같은 공간이다. 이들은 여기서 소소한 일상부터 일에 관한 아이디어까지 모든 것을 공유한다.
주방은 호스텔 사람들의 사랑방과 같은 공간이다. 이들은 여기서 소소한 일상부터 일에 관한 아이디어까지 모든 것을 공유한다.
호스텔 입주민의 일상. 붉은 조명이 특이한 앤드루 워드의 방은 마치 바나 클럽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호스텔 입주민의 일상. 붉은 조명이 특이한 앤드루 워드의 방은 마치 바나 클럽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입주민들이 다 함께 트웬티미션 근처에 있는 바에서 열리는 생일 파티에 가고 있다.
입주민들이 다 함께 트웬티미션 근처에 있는 바에서 열리는 생일 파티에 가고 있다.
인터넷 보안회사를 운영하는 아도니스 가이타치스(Adonis Gaitatzis)가 옥상에서 식물을 돌보고 있는 다이애나 브룩스(Diana Brooks)와 에밀리 에릭슨을 올려다보고 있다. 셋 다 호스텔에 가장 오래된 입주자들이다.
인터넷 보안회사를 운영하는 아도니스 가이타치스(Adonis Gaitatzis)가 옥상에서 식물을 돌보고 있는 다이애나 브룩스(Diana Brooks)와 에밀리 에릭슨을 올려다보고 있다. 셋 다 호스텔에 가장 오래된 입주자들이다.

 

호스텔의 입주자 중 상당수는 극도로 개방적인 연애를 즐긴다. 여러 사람과 동시에 사귀는 건 물론 스리섬이나 스와핑도 빈번히 이루어진다. 창조의 밑천인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가지고, 프라이버시가 보장되기 힘든 기숙사 형태의 주거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라이프스타일일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한 지붕 아래서 같은 마인드를 가지고 공존하는 이들의 유대관계는 남다르다. 각자의 직장에서 퇴근한 뒤 찾아오는 호스텔의 밤은 언제나 왁자지껄하다. 입주자들은 주방에 모여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다가 다 함께 클럽에 놀러 가기도 하는 매일 속에서 비전을 나누고 서로에게 의존한다.

아도니스 가이타치스의 방에서 장난스러운 의식을 거행 중인 이들.
아도니스 가이타치스의 방에서 장난스러운 의식을 거행 중인 이들.
프로그래머 휴고 멜로(Hugo Melo)가 자신의 방에서 음악을 듣고 있다.
프로그래머 휴고 멜로(Hugo Melo)가 자신의 방에서 음악을 듣고 있다.

 

방탕하기 이를 데 없어 보이는 청년들임에도 아이러니한 것은 이들이 바로 실리콘밸리의 미래를 바꿀 잠재력을 갖춘 인재들이라는 점이다.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이자 매해 혁신적인 발전을 거듭하는 IT업계에 속한 인물로서, 이들은 자신의 활동을 어느 하나로 규정짓지 않는다. “전 IT를 산업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들은 이메일이나 휴대폰, 자동차를 더 이상 어떤 ‘기술’이라고 여기지 않잖아요. 그것들이 처음에 발명되었을 때는 첨단 기술이라고 했겠지만, 이제는 그냥 일상의 도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죠. IT라는 건 산업이 아니라 하나의 운동이자 현상이에요. 산업은 누군가가 통제하거나 관리할 수 있어요. 하지만 IT는 누구나 그냥 온라인으로 접속해 스스로 익힐 수 있는 무엇이에요. 그게 제가 하는 일에 대해 정의를 내리기 힘든 이유죠.” 트웬티미션의 초기 입주자 중 한 명이자 오클랜드에서 웹 마케팅 에이전시를 운영하는 앤드루 워드(Andrew Ward)의 말은 해커 호스텔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잘 나타낸다. 만약 실리콘밸리가 만들어내는 최첨단 기술이 전 세계 다른 지역보다 2년은 앞선 것이라고 한다면, 그 원천은 이런 발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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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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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한 달에 올인

이직을 하든, 회사를 옮기든 일단 내 커리어에 변화가 생기면 첫 한 달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첫인상이 결국 끝까지 간다. 냉혹한 정글 같은 사무실에서는 ‘처음이니까’ 같은 변명은 통하지 않더라. 찍히면 그냥 끝이다. 팀장한테 한번 찍히면 출근하는 것 자체가 곤혹스럽다. 새로운 곳에서 처음 부여받은 업무는 무조건 깔끔하게 끝내야 하고, 내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인지 어필해야 한다. 첫 한 달은 조금 오버해도 좋다. ‘쭈그리’보다는 ‘오버쟁이’로 살기가 더 편한 법이다. 괜히 구멍 많은 사람으로 찍혔다가는 학생주임인 아버지를 담임 선생님으로 만난 ‘도룡뇽’처럼 팀장이 매번 나만 딱 찍어 매일매일 체크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시작이 어긋나면 끝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버린다. H, 출판사 편집팀

새로운 상사를 만났다

연말이면 휴가 내기가 두렵다. 폭풍처럼 이어지는 조직 개편과 인사이동 대상자가 아니어도 많은 변화가 몰아치곤 한다. 소문만 무성하던 인사이동이 그저 뜬금없는 소문으로 그칠 때도 있지만 신들린 듯 맞아떨어질 때도 있고, 또 아무런 준비 없이 변화를 맞닥뜨릴 때도 있다. 새로운 부서로 발령 나는 것만큼이나 당황스러운 건 1년도 채 되지 않아 새로운 상사를 맞이할 때다. 아무리 원수 같은 상사였어도 상사가 바뀌는 건 두려운 일이다. 일단 새로운 상사의 정체가 밝혀지면 그의 휴대전화 번화부터 입력하라. 상사의 첫 전화에 ‘누구세요?’ 하고 응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가 원래 있었던 부서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상사에 대한 정보를 캐내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사내 정치라는 게 티가 나면 도리어 독이 되는 법이다. 그리고 함께했던 상사가 자리를 옮기는 날 낯간지럽지 않을 정도의 문자메시지나 짤막한 이메일 보내는 것도 좋다. 원래 윗사람이란 외로운 자리에 있는 사람이기에 별것 아닌 일에도 쉽게 마음이 움직인다. 갑자기 들이닥칠 다음 인사이동에 내가 예전 상사의 부서로 옮기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P, IT 회사 마케팅팀

수상한 분위기

올해로 벌써 직장생활 7년 차. 이젠 어지간한 변화에 충분히 익숙해졌다. 새로운 상사가 오거나 뉴페이스 신입사원이 자리를 채우는 게 특별히 새롭지도 않다. 익숙해졌다는 건 능숙해졌다는 것이기도 하다. 상사가 바뀌면 그의 이전 경력을 확인하는 일은 이제 문자메시지 몇 번 주고받으면 되는, 그다지 힘든 일도 아니다. 새로 들어오는 신입사원이 있으면 이름을 열심히 외운다. 신입사원 이름 못 외우는 것만큼 ‘꼰대’ 같아 보이는 것도 없다. 이름에도 시기별로 트렌드가 있어서 이상하게 꼭 한 해에 비슷한 이름의 신입사원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의외로 쉽지 않다. 올해는 ‘예’가 들어가는 이름을 가진 신입이 꽤 된다. 인사 발령 시즌이면 이상한 기운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새로운 부서로 옮기는 거다. 그럴 때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내 명함을 열심히 뿌려대는 거다. 식당에 가서도 부지런히 명함을 놓고 나온다. 한꺼번에 버려도 될 일이지만 이상하게 나로서는 의식 같은 거다. 그렇게 명함을 다 뿌리고 나면 비로소 새로운 부서로 떠나갈 준비를 마친 기분이다. 아! 그리고 동료들 없을 때 틈틈이 짐을 미리 싸놓는다. 남들 다 퇴근하는데 혼자 짐 싸느라 퇴근도 못 하고 많은 짐을 낑낑거리며 가지고 나가면 괜히 비참해진다. K, 식품회사 인사팀

부서를 옮겼다

홈보팀에서 일한 지 5년쯤 되었을 때 커리어에 변화를 주고 싶어 부서를 한번 옮겨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직보다는 사내에서 팀을 옮기는 게 좀 더 안전하고 커리어도 더 풍부해질 것이라 기대했다. 원래 일하던 팀에서도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냈다. 인사 평가 때도 늘 좋은 점수를 받았고 동료와 특별히 불화를 겪지도 않았다. 다만 커리어에 욕심이 났을 뿐이다. 그래서 해외영업팀에 지원했다. 이직하는 게 아니라 부서만 옮기는 것이니 위험부담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선택은 잘못된 것이었다. 해외영업팀과 홍보팀은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홍보팀은 여초 조직인 데 반해 해외영업팀은 완벽한 남초 조직이었다. 회식도 이전보다 훨씬 많았고, 이미 견고하게 맺어진 그들 사이에는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중요한 업무는 내가 아닌 나보다 훨씬 해외영업팀에 오래 있었던 사람들 차지였다. 1년 버티면 다시 홍보팀으로 복귀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그것도 내 맘대로 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팀에 정착하지 못한 아웃사이더가 돼버렸다. 나는 끝내 친한 동료 하나 건지지 못했고, 팀을 옮길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도망갈 생각만 하는 ‘객식구’였다. 요즘은 이직을 알아보는 중이다. 어차피 백세 인생, 내 커리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J, 제약회사 해외영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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