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보고 고른 앨범들

지금 가장 트렌디한 밴드, The 1975

데뷔 앨범만으로 이미 2번이나 내한 공연을 했을 정도로 국내에서의 인기가 만만치 않은 맨체스터 출신의 4인조 밴드. 이들의 라이브를 본 사람들은 다들 인정하는 경쾌하고 풋풋하며 어쩐지 섹시하기까지 한 모던록 사운드와 퍼포먼스가 여심을 제대로 공략한다. 지난 해 말부터 두 번째 앨범의 커버와 비주얼 아트를 하나씩 공개하기 시작했는데, 마치 색채 연구소 팬톤이 선정한 올해의 컬러인 로즈 쿼츠와 세레니티를 차용한 듯 오묘한 파스텔 컬러가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I Like It When You Sleep, For You Are So Beautiful Yet So Unaware Of It>라는 로맨틱한 고백이 담긴 앨범 제목마저 마음을 간질이는 요망한 청년들.

 

 

어둠과 빛이 함께하는 남자, Raleigh Ritchie

부드러운 저음과 어쩐지 아픈 곳을 후비는 듯한 어둡고 멜랑콜리한 감성으로 R&B 장르에서 빛나는 재능을 보여주고 있는 그는 이제 막 첫 정규앨범을 냈지만 그 동안 힙합그룹 디 인터넷(The Internet), 프로듀서 사운웨이브(Sounwave) 등 굵직한 뮤지션들과 작업을 해왔고, 얼마 전에는 퍼렐 윌리엄스와 콜라보레이션 계획을 논의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주목 받는 신인이다. 서브 컬처의 러프한 감성이 느껴지는 독특한 앨범 커버는 아무래도 이런 바탕에서 오는 것 같다. 가수로서는 랄레이 리치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사실은 배우 제이콥 앤더슨으로 더 잘 알려져 있고, 사실 그보다도 미드 <왕좌의 게임>의 호위 병사 ‘그레이 웜’ 역할로 가장 유명하다.

 

 

한없이 서정적인 뮤지션, Josef Salvat

시드니에서 태어나 바르셀로나에서 법학을 공부하다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면서 영국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어쩐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력을 가진 조세프 셀벗. 그윽한 외모만큼이나 분위기 있는 팝 넘버가 가득한 그의 앨범은 앨범 표지만으로도 사는 보람이 있겠다 싶을 정도로 아티스틱한 색채로 가득하다. 얼핏 예술 사진처럼도 느껴지는 싱글 앨범과 정규 앨범의 커버들은 벡(Beck), 마이클 잭슨의 앨범 아트워크를 만들었던 유명 아트 디렉터 맷 매틀란(Mat Maitlan)이 작업했다. 서정적이고 우아한 그의 음악을 그대로 표현해 낸 비주얼은 볼수록 빨려드는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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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에게 ‘묶어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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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속박’의 사랑. 마스터와 노예라는 수직 관계로 시작하는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영역. 여기에 본디지(bondage, 결박)와 디스플린(discipline, 규율)이 합세해 ‘BDSM’라는 용어로 압축되는 가학의 세계. 뭐, 상상은 했다. 죽음에 가까운 순간에 도달하는 성적 에너지에 취해 교통사고를 내거나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크래쉬>), 질병을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애인의 몸을 밧줄로 세게 묶는(이와이 슌지 감독의 <언두>) 영화를 보며 욕망과 결핍에 관해 열띤 토론을 하기도 했다. 단지 비정상의 세계라고 생각했을 뿐, 이해한 건 아니었다. 그러던 중에 S를 만났다.

우리는 열렬히 빠져들었고 지극히 평범하게 사랑을 나눴다. 그는 침대에서 섹시했다. 매끈하고 힘이 좋았다. 사적 갈등은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성격은 달랐지만 뜨거운 영혼을 가졌다는 점에서 공통분모가 있었다. 신뢰가 깊어지고 사랑이 강도를 더해가던 어느 밤에 그는 내 엉덩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아프면 말해, 바로 그만할게.” “괜찮아.” 진짜 괜찮았다. 나 자신에게 더 놀랐다. 절정의 순간에는 ‘간지럽히지 말고 제대로 때려주지’ 하는 생각도 했다. 꽤 관능적이었다. 끝나니 아쉬웠다. 엉덩이에 붉은 자국이 선명했지만 멍은 들지 않았다. 이 감정은 뭘까? 신사동 ‘홍미닭발’의 닭발을 눈물콧물 흘리면서도 구석구석 빨아 먹는 것과 같은 맥락일까.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는 고통으로 인한 쾌감을 절묘함이라고 했다. 고통에서 내 몸의 절묘한 유희를 발견한 것일까. 그렇게 30대 중반 ‘정상인’ 여자의 상상은 현실이 됐다.

‘그만’이라고 말하면 멈춘다. 말할 수 없는 상황이면 둘만의 신호로 플레이를 멈춘다. 그러니까 안전을 기본으로 쌍방이 합의한 가학이다. 하지만 언제나 제정신일 것,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을 전제로 한다. 내가 SM에 대한 생각을 재정립한 건 S 덕분이다. 유럽에서 성장한 그는 경험이 많았다. 그는 SM이 수많은 성적 취향 중 하나이며, 사회에서 받는 억압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심리 치료 놀이라는 해석도 있다고 내게 설명했다. 서유럽에서는 SNS를 이용해 SM 파티를 공개적으로 공지하거나 이와 관련한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것이 흔한 일이다.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떠올랐다. “핵심은 절대 그레이를 거부할 수 없다는 거야.” K선배가 그 책을 빌려주면서 말했다. 책을 읽으며 그의 불친절한 손짓과 으르렁대는 행동을 받아들이는 주인공 아나스타샤에게 종종 빙의됐다. ‘아, 드디어 내가 미쳤구나’ 하고 자책했지만 호기심은 증폭했다. 그레이의 말처럼 “모든 쾌락을 흡수하는” 순간이 궁금했다. S는 그레이의 재력은 없었지만, 그만큼 능숙했다.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지름 6mm의 로프로 내 팔목을 양쪽 침대 모서리에 묶었다. 내게 괜찮은지 거듭 물었다. 단지 조금 부끄러웠을 뿐 나는 괜찮았다. 그런 감정이 호기심인지 욕망인지 모호했다. S는 부끄러움을 잊는 데 도움이 될 거라며 검은 안대를 내 눈에 씌웠다. 그리고 플레이를 하기 시작했다. 마스터(M)가 원하는 것을 노예(S)는 받아들여야 한다. 그는 내게 벌을 줘야한다며 스팽(채찍질)을 하고, 강하게 밀고 들어왔다. 시각이 제거되니 수치심은 사라졌다. 어느새 야수 같은 남성성으로 휘두르는 권력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었다. 노예니까. 손목이 묶인 탓에 어쩐지 안절부절못하는 몸짓을 하게 되는데, 그 강약의 밀도가 신선했다. 나는 말해야 했다. “줄 풀렸어. 다시 세게 묶어줘.”

S의 말은 언제나 달콤하다. “네게 기쁨을 주는 놀이일 뿐이야. 정상적인 사랑도 좋아.”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 혼란이 생겼다. 재력 대신 사랑을 선택한 가난한 연인을 비정상으로 취급하는 시대에 정상과 비정상을 규정하는 기준이 과연 있기나 할까? 결국 나의 성적 취향을 인정하는 것, 한마디로 내 욕망의 주인이 되는 것이 정상이라고 믿고 싶다.

수잔 손택은 에세이 <매혹적인 파시즘>에서 SM 플레이의 시나리오에 대해 정확한 공식을 제시한다. “색채는 검은색, 소재는 가죽, 유혹은 아름다움, 정당성은 정직, 목표는 황홀경, 판타지는 죽음이다.” 섹슈얼리티의 본질을 끝까지 파헤쳐보고자 하는 이들의 사적 취향이자 위험한 놀이. 그 끝이 황홀경이라면 기꺼이 가겠다. 보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여러 검은 도구를 휘두르며 연기하는 그의 퍼포먼스가 실은 애인에게 극적인 성취감를 안기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을 안다. 그는 사랑을 주기 위해 플레이한다. 내 몸에 상처는 없다. 강렬하게 지속되는 기쁨만 존재할 뿐이다. 이걸 평생 모르고 사는 여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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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도 긴 소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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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 불리는 작품들의 멋진 점은, 그 안에 들어가 감상할 때까지 어떤지, 얼마나 훌륭한지 가늠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교향곡을 연주에 필요한 악기 수로 판단할 수 없으며, 영화를 출연 배우의 개런티로 알 수 없고, 또한 소설을 그 길이로 파악할 수 없다. 책이 두꺼우면 읽기 어렵겠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그런 추측은 종종 배신당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야기가 짧으면 여운도 길지 않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짧지만 깊고, 때로 복잡한 이야기들의 세계가 바로 단편집이다.

<이렇게 그녀를 잃었다>는 한 남자가 실연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한 글이다. 아니다. 실연은 주인공 유니오르의 삶 중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모든 사람의 삶이 그렇듯이 말이다. 2007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으로 단박에 퓰리처상을 받은 작가 주노 디아스는 두 번째 책으로 9편의 단편을 엮은 <이렇게 그녀를 잃었다>를 발간했다. 이야기들은 연속적인 동시에 독립적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유니오르의 형 리파와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두 형제의 여자들을 만날 수 있다. 리파는 만나는 모든 여자를 침대로 끌어들이는 잘생긴 남자였다. 하지만 병에는 이길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여자를 만났지만 결국 죽음이 그를 데려갔다. 동생인 유니오르는 또 어떤가. 책의 첫 문장은 이러하다. ‘난 나쁜 놈이 아니다.’ 여자와 헤어진 뒤 저런 말을 하는 남자라면 이미 보나마나다. 결별의 이유는 그의 외도였다. 두 형제의 여성 편력 덕분에 이 책에는 여자와 섹스를 암시하는 무수한 비속어가 등장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또 다른 단편 <겨울>은 두 형제의 어머니가 미국에서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던 시간을 담았다. ‘어머니는 소소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고, 자식이나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이야기 하고 싶었다.’ 견딜 수 없어서 집밖으로 나서지만 갈 곳이 없으니 집으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던 어머니의 눈물과, 그 눈물을 못 본 척하는 두 아들. 짧은 이야기들이 모여 도미니카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가족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한편 셔우드 앤더슨의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는 <이렇게 그녀를 잃었다>와 또 다른 미국을 보여준다. 이 연작소설은 사실 20세기 미국 문학 강의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수업에서 교재로 쓰이는 작품이다. 셔우드 앤더슨은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작가로 성장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는 레이 브래드버리부터 윌리엄 포크너까지, 수많은 미국 작가들에게 영감을 준 소설이다. 그 이유는 이 연작들을 관통하는 현대적 외로움의 정서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이 연상되는 와인즈버그는 가상의 도시일지 모르지만 그 이름을 서울이라 바꾸어 불러도 하나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작가가 43세 때 발표한 이 소설집에서 가장 먼저 쓰인 작품은<손>. 윙 비들바움이라는 남자의 ‘손’이 주인공이다. 동네의 자랑이라고 할 이 표정 많은 손은, 딸기 수확에 큰 재능을 보였으며 젊을 때 그가 가르치던 학생들을 성추행했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앤더슨의 소설에서 희망은 작 게 부풀고 쉽게 꺼지며, 그 격렬한 심경의 변화를 아는 것은 오직 당사자뿐이다. ‘세계 어디에나 진실들이 널려 있었고 그 진실들은 모두 아름다웠다.’ 하지만 작가는 진실을 독점하고자 하고, 그 진실에 의거해 살아가려고 하면 그 순간부터는 아름다움이 아닌 ‘그로테스크’가 생겨난다고 소설집 첫머리에서 주장한다. 이 책은 그렇게 절망한 사람들의 소외된 정서를 이야기한다.

이기호의 짧은 소설 40편이 실린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는 앞의 두 소설과 비교하면 한층 경쾌하다. 2백52페이지밖에 되지 않는데다가 삽화도 꽤 있다. 여기에도 많은 이들이 등장하지만, 하나같이 일상 속 시트콤 같은 순간 속의 반전 유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타인 바이러스>는 메르스가 한창 기세를 떨치던 때 인터넷을 떠돌던 유머 글을 떠올리게 한다. 비행기를 탄 남자. 그는 옆자리에 앉은 할머니가 연신 끙끙 신음하며 잔기침을 하는 게 못내 불안하다. 심지어 말하는 걸 들으니 중동에서 30년간 살았단다. 견디다 못해 남자는 승무원을 불러 자리를 옮겨달라고 한다. 하지만 그 이후로 일은 남자의 예상과는 다르게 전개된다. <초간단 또띠아 토스트 레시피>는 TV에서 본대로 또띠아토스트를 해 먹으려고 한밤중에 밀가루 반죽을 한, 부모님 신세를 지며 살고 있는 실업자의 이야기다. 쿡, 웃음이 나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하다. 고시텔에서 밤마다 달그락거리며 뭘 닦고 또 닦던 남자의 사연이 알려지는 순간 역시 그렇다. 이기호는 책에서 노력한 대로 풀리는 법이 없는 팍팍한 세상살이의 편린을 모둠으로 보여준다.

이 세 단편집의 공통점은 <이렇게 그녀를 잃었다>의 한 구절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때로 우리는 언제나 시작에 그치고 만다’. 성공할 것 같은 예감은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고, 사랑 역시 그러하며, 생명은 말할 것도 없다. 그저, 실패한 적 없는 것처럼 또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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