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 : 남인도 vs 서호주

남인도의 께랄라

남인도의 께랄라주는 인도의 여느 다른 지역과는 그 느낌이 많이 다르다. 배낭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께랄라 주의 코친은 아주 오래 전 전통 낚시 방식인 ‘중국인의 낚시(chinese net)’가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재현되어 있는데, 석양이 질 무렵이 특히 아름답다. 남인도 아티스트의 그림을 볼 수 있는 갤러리 카페와 께랄라 전통 공연을 볼 수 있는 극장, 코코넛과 해산물을 활용한 지역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이 골목 골목을 메우고 있다. 께랄라 주의 알레피에서는 배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하우스 보트 여행을 할 수 있다. 배를 타고 강을 따라 유유자적 한가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데, 요리사가 배에서 요리도 직접 만들어 준다. 아침이면 강가의 마을 사람들이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작은 배를 타고 학교에 가고, 빨래를 하는 일상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서호주의 퍼스 

퍼스는 호주에서 일조량이 가장 많은 지역 중 하나로 연중 130일 이상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를 만끽할 수 있다. 1850년대 골드러시 시대에 금광을 개발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2000년대를 넘어서며 천연가스와 아연, 주석 채굴에 집중하며 ‘골든 스테이트’의 명성을 이어온 서호주의 주도 퍼스. 경제적 풍요와 비례해 와인 문화도 발달했다. 퍼스를 포함한 서호주 지역은 규모는 작지만 고급 와인 생산 지역으로 손꼽힌다. 해안가라는 지형적 장점과 자갈 토양의 결합으로 보르도와 유사한 조건을 갖춰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 등 보르도 품종을 주로 재배한다. 그중에서도 퍼스 북쪽의 스완 밸리는 호주 최초의 와인 생산지이자 호주 최고의 샤르도네 생산지다. 개성 있는 와인과 파인 다이닝을 즐기는 서호주 와이너리 투어만으로도 매력적인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정진화의 농담(濃淡)

1606mcmacumd16_06거울 같은 그림이 있다. 우연히 마주한 피사체가 지금 또는 과거의 나처럼 다가오는 작품. 좋은 작품은 그렇게 관람자 저마다의 의미로 오독되며 수세기 동안 살아 숨 쉰다. 시간을 넉넉히 두고 섬세하게 바라보고 싶은 그림. 정진화 작가의 ‘키스’ 시리즈가 그랬다. 적막한 진공의 공간 속 엉켜 있는 두 사람. 서로에게 얼굴을 파묻은 형태는 흐릿하지만 감싸 안은 손만은 선명하다. 은밀하다면 은밀하고, 야릇하다면 야릇할 수 있는 풍경이 더없이 서정적이고 우아하다.

만리동에 자리한 정진화 작가의 작업실 ‘만리재’. 붉은 벽돌로 마감한 마당의 작은 정원에 배롱나무가 자라고 있다. 안으로 들어서니 건축가 듀오 SANAA가 디자인한 래빗 체어와 한스 웨그너의 Y 체어가 전통 고가구 옆에 놓여 있다. 창틀에 올려놓은 불상과 촛대 사이로 햇빛이 부드럽게 든다. 차분하면서도 생기가 흐르는 공간이다. 타고난 성향이기도 하지만 그가 공간에 공을 들인 데는 이유가 있다.

올해 서른한 살인 정진화 작가는 대한민국에서 미술을 업으로 삼는 이라면 으레 동참해야 하는 궤도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나 있다. 유학하지도 않았고, 레지던시와 공모전조차 지원하지 않는 그는 전속 갤러리도 없다. 만리재는 그에게 작업실이자 갤러리로 이곳에서 컬렉터들과 소통한다. 정갈한 공간에 쌓여 있는 작품들, 흰색 니트에 흰색 앞치마를 두른 공간의 주인이 한 풍경처럼 다가왔다. 그가 음악 볼륨을 줄이고, 따뜻한 차를 건넨다.

탐미와 탐닉, 남성과 여성, 제3의 성, 이성애와 동성애 등 몇 개의 키워드로 읽을 수 있는 정진화 작가의 작품을 단지 춘화라고 규정짓는 것은 게으른 수식이다. “춘화라 하면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섹슈얼리티가 작품의 중심이어야 하지만 제 작업에는 성적 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는 없어요. 다만 에로티시즘을 다루는 것은 제가 키스나 섹스 등 인간의 근본 행위에서 아름다움을 보기 때문이에요. 근원적인 것들은 세계가 변해도 계속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이기도 하고요.” 꾸미고 과장하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한 그에게 야생은 영감의 원천이자 뮤즈다. “자연과 야생에서는 시간 개념조차 무색하잖아요. 그곳에는 생의 순환만 있을 뿐이죠. 태어나고, 먹고, 자라고, 죽고, 다시 태어나고···. 거스를 수 없는 것을 향한 동경이 있어요.”

 

자연을 향한 동경이나 생의 순환 등 동양적 관념이 작업의 중심이라면, 경계라는 주제는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야깃거리다. 모호한 선과 번지는 채색 스타일 등 동양화적 표현 역시 경계와 관련돼 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대상을 규정하고 선을 긋잖아요. 터번 시리즈에는 성별을 구별할 수 없는 모호한 대상들이 등장해요. 트랜스젠더를 그리기도 하고요. 손동작이나 미묘한 움직임에서 힌트를 줄 뿐이에요.” 경계에 대한 반감에서 시작한 작업은 이제 경계가 지닌 이중적 의미까지 확대되고 있다. “경계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망과 경계로 보호받고자 하는 바람, 충돌하는 두 의미를 생각해요. 플라밍고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도 그래서죠. 플라밍고 무리가 서식하는 남아프리카 탄자니아의 나트론 호수는 주변 용암지대에서 흘러든 물의 탄산수소나트륨 때문에 생명체가 들어가면 그 즉시 화석이 되는 죽음의 호수죠. 이곳에 유일하게 몸을 담글 수 있는 존재가 플라밍고에요. 탄산수소나트륨에 거부반응이없기 때문에 나트론 호수는 곧 포식자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방공호인 셈이죠.”

먹과 죽지라는 재료를 보면 동양화를 작업한다 할 수 있지만 그는 자신을 동양화 작가라고 소개하지 않는다. “동양화적 방법 자체를 고수하는 건 아니에요. 지금의 개념과 매체 방식이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이 방법을 사용하는 거죠.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달라진다면 표현 매체 또한 바뀔 수 있어요. 가령 돌을 깎거나 사진을 찍는 등 여러 방식으로요.” 하지만 그는 동양화적 표현 방법이 자신의 성격과 잘 맞는다고 덧붙인다. “성격이 급해요. 기다리질 못해서 인터넷 쇼핑을 못해요. 전화해서 비용 지불하고 퀵서비스로 받겠다고 한 적도 있어요.(웃음) 오랜 시간을 묵히며 작업하는 성향이 아니기 때문에 먹과 죽지가 잘 맞아요. 보통 베이스 작업을 한 뒤 이목구비와 머리, 가슴을 그려요. 마른 부분에 먹을 덧대면 붓 자국이 남기 때문에 작품이 완성되기 전까지 베이스가 마르면 안 돼요. 작업을 하다가 중간에 멈추고 ‘내일 해야지’ 미루는 게 애초에 불가능하죠. 그렇게 30~40장을 반복하고 실패를 거듭해야 마음에 닿는 작품 한 점을 얻을 수 있어요.”

특별한 종이 때문에 작업이 까다로워지기도 한다. “대나무 종이를 사용하는데 닥종이에 비해 섬유질이 짧아 잘 찢어져요. 미술에 주로 사용하는 종이는 아니지만 한지와 장지의 중간 느낌으로 특유의 번짐이 마음에 들어 고수하죠. 기본 재료에 대한 고집이 있어요. 색을 사용하더라도 돌가루를 개어 채색하고요.” 완성 후에는 작품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복원 전문가에게 배접을 의뢰한다. 그에게 작품 완성은 붓을 놓는 순간이 아니라 컬렉터에게 전해지는 순간까지 일련의 모든 과정을 의미한다.

 

1606mcmacumd16_05

전통의 재료로 동시대의 서정을 담는 그는 뷰티 브랜드나 영화 미술팀의 러브콜을 받기도 한다. 영화 <사도>와 <간신> 속 그림들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사도>는 고증을 기반으로 한 병풍이나 유물을 전통 방식 그대로 작업했어요. 다만 사도(유아인)의 방안 병풍은 제 스타일대로 표현했죠.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그림인데 무리 중 한 마리가 물 밖으로 튀어 올라요. 에너제틱하고 끼를 주체하지 못하는, 물 밖으로 나가고 싶은 사도의 마음을 표현했죠. <간신>은 미술 세트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요소들이 많아서 자유롭게 작업했고요. 민규동 감독님이 영화 안에서 개인전 하는 것처럼 작품을 편히 다 보여주자 하셨고, 그걸 편집하지 않고 잘 담아주셔서 애착이 커요.”

분주한 와중에 지난 4월 그는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전시를 열었다. “실적이 좋았어요. 해외 컬렉터들에게 좋은 피드백을 받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웠어요. 좋아하는 작품이 있었거든요. 판매할 생각이 없었는데 ‘판매가 될지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줬으면 좋겠다’라는 의견이 있어서 얼떨결에 내보낸 작품들이 모두 판매돼버리니 마음이 편치 않더라고요. 작업 자체가 주는 의미가 크기 때문에 가난하더라도 마음에 드는 작품 하나 있으면 행복해요. 적어도 내가 갖고 싶은 그림은 곁에 두면서 작업하고 싶거든요.” 작업의 스케일도 키워갈 생각이다. “공간을 지배하는 작업을 시도해보고 싶어요. 관계와 감정에 관한 개념을 풀어내는 작업도 하고 싶고요. 영화 같은 작업도 생각하고 있어요. 영화를 완성하겠다는 게 아니라 영화처럼 도입이 있고 클라이맥스가 있고 결말이 있는, 감정의 선이 연결되는 작업을 해보려고요. 갤러리에서 전시를 보고 나왔는데 마치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은 감상을 일으키는 그런 그림이요.”

연관 검색어
, , ,

발칙한 여자들

1606mcmalimk11_01

‘여심’이란 말은 있어도 ‘남심’이란 말은 없다. 아무래도 여심을 곱씹어 생각하게 되는 탓이리라. 솔직히 여심은 여자들도 그 실체를 잘 모른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되는 여자 마음에 비하면 남자들의 마음은 참 빤해서 고맙기까지 하다. 여자의 그런 아리송한 속내를 담은 소설과 에세이가 새로 나왔다. 공교롭게도 모두 일본 작가의 작품이다. 여자를 주인공으로 소소하게 ‘썰’을 푸는데 마냥 소박하지 않고 오히려 화끈하고 솔직하다.

<여자는 허벅지>. 제목이 일단 다 했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아주 사적인 시간> 등을 발표하며 연애소설의 달인으로 등극한 여성 작가 다나베 세이코가 주간지에 연재한 칼럼을 선별해 에세이로 묶었다. 1928년생인 그녀는 서른 살에 데뷔해 연애소설은 물론 여행기, 사회 풍자적 에세이를 저술하고 고전문학 번역에도 열성을 다했다. 그런 원로 작가가 1971년 무렵부터 20여 년간 연재한 글들은 적나라하면서도 거부감 없이 경쾌하게 여자와 섹스, 그리고 여심을 그린다. 지금보다도 훨씬 보수적인 시대를 살았음에도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독립적인 가치관을 보여주는 그녀는, 책에서 남자들이 잘 이해하지도 못하고 알기조차 어려운 여자의 마음 깊은 부분까지 거침없이 길어 올린다.

‘여자도 때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성욕을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때라고 해도 심리적 욕구 또한 충족되었으면 하는 의식이 아주 심층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중략) 성욕. 남자에게 그것은 주사기에 들어 있는 약간의 에센스이고, 여자에게 그것은 양치액처럼 희석시켜 오래도록 쓰는 것이다.’

그녀는 이렇듯 진지하고도 명쾌하게 남자들의 질문에 답하는가 하면, 여자 일생의 3대 쇼크는 ‘초경, 첫 경험, 출산’이 아니겠느냐는 남자의 추측에 모르는 소리라고 일침을 가한다. ‘두 번째 쇼크는 바로 결혼생활이다. 첫 경험을 했다고 해서 누가 서러워하겠는가. (중략) 여자는 결혼생활을 통해 남자의 정체와 본질을 깨닫는다. 밖에 나가면 대단한 천재, 대단한 정치가였던 사람이 집 안에 발을 한 발짝만 들여놓으면 누가 보더라도 그냥 아저씨가 된다. (중략) 이것이 인생에 눈뜨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랴. 그에 비해 첫 경험, 처녀성 상실 따위는 그저 우스운 이야기일 뿐이다.’ 이 정도면 시쳇말로 ‘사이다’가 따로 없다. 30~40년 전에 쓰인 이야기인데도, 자연스럽게 산전수전 다 겪은 왕언니의 속 시원한 입담에 빠져들게 된다.

사노 요코의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또한 일본의 여성 작가가 중년에 쓴 수필집이라는 면에서 <여자는 허벅지>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 사노 요코는 1938년 베이징에서 태어난 전후 세대인데 그림 작가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에세이를 집필했다.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여심은, 다나베 세이코의 그것에 비교하자면 한층 내밀하고 감성적인 측면이 두드러진다. 무엇보다 사노 요코는 여자들이 가진 몽상하는 기질과 열등감, 비합리적인 사고방식 등 남에게 쉬이 털어놓기 힘든 부분을 이야기한다.

‘자신이 한결같이 아름다운 사람이길 열망하지 않는 여자는 없다. 나의 친구는 무서운 말을 한다. “절세 미녀란 건 시대에 따라서 변해왔을지 몰라. 하지만 절세 추녀란 건 어느 시대에도 결코 변하는 일이 없을걸.”’ 작가는 인테리어 잡지에 나오는 미니멀하게 꾸민 감각적인 방을 보면서는 ‘이런 곳에 사는 남자는 여자를 임신시키고 “책임이라고? 너도 즐겼잖아?” 하며 독한 담배 연기를 코에서 내뿜는다’고 상상하고, 분홍색 소파에 페르시아 융단이 깔린 집 사진에서 느껴지는 부자의 에너지와 배짱에 보는 것만으로 녹초가 된다며 시니컬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정작 자신이 베란다에 놓은 흰 의자가 촌스러워 보이지 않을까 안달한다. 물건을 담았던 검은 비닐봉지를 그냥 버리는 게 아까워서 외출해서 굳이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봉지를 버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작가에게 동생이 한마디 한다. “언니, 지금 이 전화비면 쓰레기 봉지 몇 장이라도 사겠다.” 예쁜 여자를 질투하고 드라마를 보면서 시답잖은 상상을 하며, 가끔은 앞뒤가 맞지 않게 군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것도 여심이다.

기타무라 가오루의 <술이 있으면 어디든 좋아>는 사실 앞의 두 에세이에 비하면 발칙함이 덜하고 훨씬 말랑하다. 출판사의 잡지 편집부에서 일하는 커리어 우먼 코사카이 미야코의 일상을 담은 픽션 소설이다. 술을 좋아하는 미야코는 입사 후 첫 회식 자리에서 하늘 같은 선배 편집자에게 술주정을 부리는 등 온갖 사고를 치면서도 술자리에 빠지지 않는 주당이다. 그런 그녀가 회사에 다니고 사람을 만나고 그러다 애인도 만들고, 그런 식으로 창창한 20~30대를 보내는 일상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펼쳐진다.

미야코의 연애 스토리 못지않게 여자들의 심리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은 주인공과 회사 동료들에 대한 묘사나 그들이 풀어놓는 이야기들이다. 대학 친구가 잘난 남자를 만나 결혼하면서 ‘이 가운데 가장 행복한 사람은 나야’라고 뻐기는 데 배알이 뒤틀려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고 토로하는 여자 동료의 심리를 두고 남자 동료와 갑론을박을 벌이는가 하면, 특별히 사랑하는 마음은 없지만 만만한 상대라는 이유로 교제해온 남자에게 뜻밖의 이별 통보를 받고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기도 한다. 이 책들을 다 읽는다고 여심에 통달하는 건 아니겠지만, 어쩐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기는 한다.

연관 검색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