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으로 사라져가던 하우스를 패션계의 중심 무대 위로 끌어올린 듀오의 두 번째 무대였다. 패션위크 기간 꾸레주 모토 재킷을 입은 젊은 파리지엔이 곳곳에서 눈에 띄고, 셀렉션이 특별 디스플레이로 봉마르셰 백화점 한편을 넓게 차지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 꾸레주는 지금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지난 시즌에 이어 보디수트, 모토 재킷, 미니스커트 등 하우스의 시그니처 피스를 새롭게 정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쇼 노트에서도 언급했듯 ‘Make it new. Make it warm. Make it practical’이란 테마가 고스란히 투영된 아이템들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특히 어깨에 아이폰 배터리를 탑재한 일명 ‘아이 코트’는 버튼을 누르면 어깨와 등, 주머니가 따뜻해지는 기능을 갖춘 하이테크 제품. ‘매일 손에 최신 아이폰을 들고 살면서도 왜 스마트한 옷을 상상하지 않을까’라는 그들의 재기발랄한 아이디어가 실현된 순간!
지난 시즌 들꽃에서 아이디어를 확장해나갔다면 이번 시즌엔 스위스의 눈 덮인 산봉우리에서 영감을 얻었다. 스위스 크슈타트 지역의 오두막에서 볼 수 있는 장식적 요소들을 형상화한 상트 갈렌 엠브로이더리, 트리밍, 레이스, 잎사귀 모티프로 눈처럼 낭만적인 컬렉션을 완성했으니까. 그중 특히 돋보인 건 메인 아이템으로 선보인 소매가 퍼로 장식된 화려한 케이프 코트, 민속적인 엠브로이더리 장식이 더해지거나 양가죽으로 트리밍된 스웨터 코트 등의 아우터웨어. 또 늘 그랬듯 피날레에서는 컬렉션 컨셉트와 어울리는 깜짝 게스트가 등장해 보는 재미를 더했다. 스위스 프리부르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극단 레 바탕 드 라 로슈가 카우벨을 연주하며쇼의 대미를 장식했는데, 흥미로운 건 이들의 악기를 유심히 살펴보면 컬렉션 룩의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흑단같이 새까만 머리, 얼굴에 검은 선을 그은 게이샤 같은 모델들이 등장하자 관객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재빠르게 손이 반응할 만큼 강렬했다는 증거다. 반면 룩은 차분하고 조용하게 전개됐다. ‘뺄셈’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색과 디테일을 비롯한 많은 것을 덜어낸 모습. 그렇다고 결코 미니멀하거나 심플한 건 아니다. 흰색과 검은색을 주조로 비대칭과 대비, 해체적 재구성이 담긴 아방가르드도 즐겼다. 게다가 흰색 페인트와 석고를 거칠게 붓칠해 독특한 질감을 더하는가 하면,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은 ‘I will be back soon’이라는 메시지도 적었다. 그의 고요한 외침처럼 전성기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