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들을 향한 펜디의 유혹이 정점에 달했다. 켄달 제너의 오프닝 룩으로 시작된 쇼는 그야말로 러플과 프릴, 레이스의 향연. 프릴로 장식한 사이하이 부츠와 백은 이번 시즌 히트를 예감하게 했고 파도처럼 넘실대는 스트라이프는 퍼, 미디 드레스, 선글라스에 이르기까지 곳곳을 점령했다. 3D 기법으로 자잘하게 커팅한 네이비 코쿤 코트는 이번 시즌 로맨틱한 변주를 보여주는 궁극의 의상. 또한 18세기 일본 보태니컬 아트에서 영감을 받은 식물과 꽃 프린트는 새틴, 레이스, 퍼 등 다양한 텍스처 위에 아름답게 수놓였다. 게다가 펜디 하우스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최고급 여우털 코트마저 가볍고 경쾌한 페이크 퍼처럼 느껴졌으니! 처음엔 어둡고 컴컴한 우주 같던 쇼장이 디자이너 듀오가 부린 마법으로 한층 밝아진 듯 에너지가 넘쳤다.
“비율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원만하고 둥근 형태를 지향했고, 로맨티시즘은 최대한 현대적인 방식으로 풀어내고자 했죠.” 콘수엘로 카스틸리오니의 설명은 오프닝 룩만 보아도 충분히 이해된다. 소매가 풍선처럼 한껏 부풀어오른 블라우스와 발에 고리를 걸어 입는 팬츠, 앞뒤 길이를 다르게 재단한 케이프의 조합에서 딱딱한 직선의 흔적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프린트에 대한 실험정신 또한 느껴지는데 색종이를 오려 붙인 듯한 할리퀸 패턴과 컴퓨터 화면을 여러 번 확장해 탄생시킨 그래픽 패턴들이 앞다퉈 등장했다. 특히 푸른색과 흰색 물감이 마구 섞인 듯한 소용돌이 패턴은 디지털 작업의 결과물임에도 얼핏 자카드 소재로 착각할 만큼 고급스러웠다. 끝으로 올가을 마르니 룩을 마무리하는 화룡점정은? 1960년대 풍 체인 이어링과 검붉은 립스틱!
화려한 디테일, 원색 컬러 팔레트 등 과장된 맥시멀리즘으로 무장한 밀라노의 가을. 그 속에서 질샌더의 미학은 유독 빛났다. 간결한 미니멀리즘을 고수하되 구조적인 실루엣으로 승부수를 띄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로돌포 파글리아룬가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허리를 잘록하게 조인 더블 브레스티드 재킷이며 오버사이즈 인조 퍼 톱에 슬림 핏 메시 스커트를 매치한 룩, 다채롭게 변주된 스파게티 스트랩 드레스, 주얼 장식 시프트 드레스 등 질샌더의 옷은
여전히 관능적이면서도 우아했다. 블랙과 화이트 컬러를 주조로 은은히 반짝이는 메탈 컬러를 곳곳에 배치한 것 역시 주효했다. “질샌더의 성격을 단순히 담백한 ‘미니멀리즘’이란 단어로 압축하긴 힘들어요. 디테일이 많은 룩보다 더 화려해 보일뿐더러 섹시하거든요.”한 인터뷰에서 디자이너가 자신 있게 한 말에 절대적으로 공감하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