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기발랄한 퍼포먼스에 능한 제레미 스캇의 진가는 이번 시즌에도 어김없이 발휘됐다. 프런트로엔 여느 때처럼 모스키노의 기분 좋은 선물이 놓여 있었는데, 바로 담뱃갑을 귀엽게 표현한 아이폰 케이스!(세제 분무기에 이어 패션 피플의 인스타그램을 도배할 게 분명했다.) “15세기 피렌체에 성행하던 ‘허영의 불꽃’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청교도들의 그릇된 믿음이 과열돼 당시 사치품으로 치부했던 책, 미술품, 패션, 악기 등 모든 것을 불에 태웠죠.” 물론, 제레미 스캇은 이 심각한(!) 역사를 위트 있게 패러디했다. 페르시아 카펫 위에 야릇한 춤을 추며 등장한 모델들은 거대한 샹들리에가 달린 이브닝드레스, 연기를 피우는 기계를 옷 안에 삽입해 불에 그을린 듯한 느낌을 현실감 있게 표현한 가운을 입고 등장했다. 패션에 대한 판타지를 유쾌한 쇼로 재해석한 디자이너에게 박수를!
타임머신을 타고 1920년대로 돌아가 그 시대를 풍미했던 조형 학교 바우하우스와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에게서 영감을 받은 막스마라.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의 틈바구니에서 꽃을 피운 이들의 자유롭고 창조적인 움직임은 반짝반짝 빛나는 시퀸, 다양한 색채가 어우러진 스트라이프 프린트로 재현되었다. 특히 차콜 그레이 스트라이프 팬츠 수트는 세기의 여배우 마를렌 디트리히에게서 영감을 받은 것. 이 밖에도 수영복을 연상시키는 플레이수트는 1930년대 독일 체육관의 수업 복장에서, 말쑥한 테일러링에 골드 시퀸을 곳곳에 장식한 점프수트는 바우하우스 디자이너들의 작업복에서 각각 힌트를 얻었다. 어느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쇼였지만 마음을 사로잡는 코트를 발견하지 못해 아쉬운 건 에디터뿐이었을까?
소녀들을 향한 펜디의 유혹이 정점에 달했다. 켄달 제너의 오프닝 룩으로 시작된 쇼는 그야말로 러플과 프릴, 레이스의 향연. 프릴로 장식한 사이하이 부츠와 백은 이번 시즌 히트를 예감하게 했고 파도처럼 넘실대는 스트라이프는 퍼, 미디 드레스, 선글라스에 이르기까지 곳곳을 점령했다. 3D 기법으로 자잘하게 커팅한 네이비 코쿤 코트는 이번 시즌 로맨틱한 변주를 보여주는 궁극의 의상. 또한 18세기 일본 보태니컬 아트에서 영감을 받은 식물과 꽃 프린트는 새틴, 레이스, 퍼 등 다양한 텍스처 위에 아름답게 수놓였다. 게다가 펜디 하우스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최고급 여우털 코트마저 가볍고 경쾌한 페이크 퍼처럼 느껴졌으니! 처음엔 어둡고 컴컴한 우주 같던 쇼장이 디자이너 듀오가 부린 마법으로 한층 밝아진 듯 에너지가 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