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종말’을 주제로 구축한 이번 시즌 릭 오웬스의 컬렉션은 어두운 주제만큼이나 혼란스러웠다. 불규칙적으로 얽히고설킨 드레이핑, 극적으로 과장되고 왜곡된 실루엣은 가히 충격적. 모헤어로 만들었다는 솜사탕 같은 커다란 헤어스타일의 모델들이 등장했을 땐 혹여 무대 기둥에 머리를 부딪히진 않을까 가슴을 졸였다. 하지만 그의 골수팬이라면 이 난해한 컬렉션에서도 이번 가을과 겨울에 입고 싶은 옷들을 쏙쏙 골라내지 않았을까? 그 위시리스트엔 밑단에 이질적인 소재로 비대칭 주름과 볼륨을 더한 울 테일러드 코트나 용암이 줄줄 흘러내리는 듯한 프린트의 아우터, 부드러운 모피 튜브톱 드레스 등이 포함될 듯하다.
한동안 스포티즘에 치중하던 겐조의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이번 시즌엔 어떠한 방식도 존중할 줄 아는 오픈 마인드를 가진 진보적인 여성상을 그려내며 트렌디한 맥시멀리즘의 진수를 보여준 것. 벨벳, 새틴, 인조 아스트라한 등의 화려한 소재와 아카이브의 꽃무늬와 호랑이 패턴을 활용한 테일러드 수트와 플리츠 드레스, <세일러 문>에서 영감 받은 키치한 베이비핑크 룩, 1950 년대 주부들이입었을 법한 하이칼라의 스모킹 블라우스 등을 차례로 선보였다. 또 디자이너 듀오 특유의 시크한 오버 핏 또한 놓치지 않았는데, 특히 피날레 무대에서 최소라가 입은 호랑이 가죽 패턴의 오버사이즈 더플코트는 이번 컬렉션의 컨셉트를 집약한 독보적인 아이템이라 할 수 있을 듯.
지암바티스타 발리의 쇼에선 늘 ‘드레스’가 핵심이다. 그래서일까? 드레스에 누구보다도 민감할 수밖에 없는 할리우드와 사교계의 절대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이번 시즌 역시 그녀들이 열렬히 환호할 꽃보다 아름다운 드레스 퍼레이드를 선보였다. 특히 아플리케와 시폰 플리츠, 하이칼라로 완성한 곱디고운 미니드레스, 러플이 우아하게 하늘거리는 슬리브리스 드레스는 할리우드 셀러브리티뿐 아니라 대한민국 청담동 며느리들도 두 팔 벌려 반길 스타일. 또 지난 시즌에 이어 피날레를 장식한 여신 지지 하디드가 입은 잔잔한 꽃무늬가 프린트된, 온몸을 살포시 감싸는 롱 시폰 드레스는 ‘뉴니스’는 없어도 어느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게 여성스러운, 지암바티스타 발리식 이브닝 웨어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