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달라진 브랜드 이름부터 숙지해야 한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남편이자 디자인 파트너였던 안드레아스 크론탈러의 존재가 부각되며 나란히 이름을 올린 것. 섹‘ 서사이즈’란 낯뜨거운 단어를 타이틀로 내세웠지만 그보단 성별의 구분 없이 즐길 수 있는‘유니섹스’나 ‘젠더리스’ 룩에 더 가까웠다. 남녀 할 것 없이 키다리로 만든 벽돌 같은 플랫폼 슈즈, 어깨선이 한두 뼘 넓은 재킷, 갖가지 스커트와 팬츠가 남녀 불문 모호하고 자유롭게 입혀졌다.“나는 남편의 옷장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어요. 그건 환경보호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죠. 옷을 서로 나눠 입는다면 많은 옷을 살 필요가 없으니까요.”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말마따나 이보다 더 쉽고 스타일리시한 환경 운동이 어디 있나 싶다. 환경을 위해 비비안 웨스트우드라 이름 붙인 여러 레이블을 간소화할 예정이라니 비비안 여사의 이 올곧은 신념에 존경을 표할밖에.
안토니 바카렐로라는 이름이 아직 생소하다면 주목하는 게 좋겠다. 지아니 베르사체의 총애를 받으며 그녀와 함께 베르수스를 이끌던 그가 다음 시즌부터 생 로랑의 새로운 아티스틱 디렉터로 활약하게 됐으니 말이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벨기에 출신으로 과감하고 구조적인 커팅, 섹시한 관능미로 2009년 데뷔와 동시에 패션계에서 이름을 날린 신예. 특정한 주제를 정하는 대신 자유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담았다는 이번 시즌 컬렉션은 그의 주특기를 충분히 살린 아찔하고 날렵한 커팅에 레이스업 디테일, 로큰롤 스피릿이 담긴 거친 웨스턴 디테일과 스포티 무드가 추가됐다. 특히 눈에 띈 것은 쇼 사이사이에 여럿 등장한 턱시도 수트의 변신. 루머가 돌던 생 로랑 하우스 입성을 예고하듯, 소재와 실루엣을 오가며 노련하게 변주한 르 스모킹 재킷을 보니 데뷔 6년 만에 이룬 이 젊은 디자이너의 뜻밖의 행보가 과히 놀랍지만은 않다.
매 시즌 독특한 헤드기어와 기하학적 도형을 활용한 룩을 선보이는 준야 와타나베. 이번에도 그의 컬렉션에서만 볼 수 있는, 마치 예술 작품 같은 헤드기어와 갖가지 도형을 오밀조밀 이어 붙인 조형적인 룩을 선보였다. 흥미로운 건 지난 시즌 아프리카에서 영감 받은 기하학적 패턴을 내세워 에스닉 스타일로 분위기를 잠시 선회한 데 대한 회귀본능이 작용했다는 것. 이번 시즌엔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준야 와타나베의 시그니처 컬러라고 할 수 있는 블랙과 레드 위주의 정제된 컬렉션을 완성했다. 한데 이번 시즌 컬렉션까지 보고 나니 패션계의 수학자라고 불리는 그에게 묻고 싶다. 옷을 완성하는 데 있어 그만의 도형을 이어 붙이는 공식이 정말 따로 존재하는 걸까?